뮤지컬 티켓 5만원…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뮤지컬 티켓 5만원…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입력 2012-09-14 00:00
업데이트 2012-09-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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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현실성 없다”…전문가 “공연계 체질 개선”

’좋은 작품은 스타·광고 없이 가능하다’ vs ‘기본적인 제작비 자체를 무시한 이상론이다’

에이콤인터내셔널 윤호진 대표가 14일 자사 제작 뮤지컬 티켓 가격을 5만 원 이하로 책정하겠다고 밝히며 뮤지컬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현재 대극장 뮤지컬 티켓 가격은 5만~15만 원으로 5만 원은 같은 규모 공연의 최저가 가격. 최고가 티켓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티켓 가격이 실제로 하락한다면 관객 입장에서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뮤지컬 제작자 사이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과 비판이 거세다. 한시적인 이벤트로 끝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

우선 윤호진 대표가 5만 원 티켓을 선보이는 첫 번째 작품인 ‘영웅’과 일반 뮤지컬을 비교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영웅’은 네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재공연이라 제작비 자체가 크게 들어가지 않는 데다 그동안 작품상과 주연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으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아 초연 작품만큼 홍보비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올해 창작뮤지컬육성지원사업 재공연 부문에 선정돼 5억 원의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파격적인 이벤트’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CJ E&M 김병석 대표는 “놀랄만한 일이고 (취지는) 존경스럽지만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배우와 스태프의 인건비를 비롯해 기술, 무대 등 모든 비용을 낮춰야 하는데 전체 제작비의 15~20%도 안 되는 광고비만 줄여서는 어렵다”며 “사업적으로 수지가 맞아야 하는데 계산이 안 나온다”고 지적했다.

영화와 비교하면 뮤지컬은 티켓 가격이 많이 비싸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380달러(42만 원)를 오르내리는 브로드웨이는 물론, 같은 라이선스 공연이라도 다른 아시아 나라보다는 한국이 싼 편이다.

한국에서 ‘위키드’ 내한 공연 티켓 최고가는 16만 원이지만 앞서 공연한 싱가포르에서는 23만 원이었고, 오는 12월 한국에 들어올 예정인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은 현재 마닐라에서 19만 원이다.

무엇보다 뮤지컬 티켓이 10만 원 선으로 책정된 것은 이미 10년 전으로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거의 변동이 없는 수준이라는 것.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도 “말이 안 된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고 단언했다.

설 대표는 “작은 뮤지컬은 연극의 10배, 큰 뮤지컬은 20배의 제작비가 든다”며 “제작자의 처지에서는 (시장 상황을) 잘 분석하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기본적으로 모든 자사 제작 뮤지컬에 이 가격 정책을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에이콤은 일단 ‘영웅’과 중극장에서 장기 공연할 예정인 ‘완득이’까지만 이 가격을 확정한 상태다.

영국에서 외국 스태프와 제작하는 ‘보이체크’ 등은 제작비 자체가 결정되지 않아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관객이 싼 가격에 좋은 작품을 본다는 것은 분명히 환영할 일이다. 무대에 올라오는 작품은 많은데 10만 원 안팎의 공연을 모두 챙겨볼 수 없어 온갖 할인 정책을 기다려야 하는 뮤지컬 팬으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높은 가격을 매기고 온갖 할인 정책을 펴는 지금과 같은 가격 정책은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이라며 “(에이콤의 가격 정책은)’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전체 제작비를 막을 올리기 전에 들어가는 고정 비용과 막을 올린 이후에 들어가는 유지비로 나누면 공연이 길어질수록 들어가는 비용은 적어지기 때문에 탄력성이 생긴다”며 “현재 공연계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에서 오픈런으로 공연하는 뮤지컬은 시즌에만 선보일 수 있는 발레나 오페라보다 훨씬 싸다”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브로드웨이는 인기를 얻으면 특별석으로 가격을 올리기도 하지만 웨스트엔드 역시 10만원 초반 대”라고 전했다.

즉 국민 소득이나 경제 규모로 볼 때 싱가포르나 필리핀은 공연 시장이 한국보다 작아서 짧은 기간 공연하면서 높은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경제 규모나 공연 시장이 한국보다 훨씬 큰 일본은 한국보다 싸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원 교수는 “한국 시장 규모에서는 서울에서 5~6개월 정도 공연하고 지방 공연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이자 연말 문을 여는 대학로 아트센터 센터장을 맡은 고희경 교수도 “로열티를 안 내는 창작 뮤지컬이 적정한 배우 출연료 상한선을 지키고 1년 정도 장기 공연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윤호진 대표의 파격적인 결단이 다른 작품이나 제작사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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