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서사 차경희 대표의 서점 운영기

고요서사 차경희 대표의 서점 운영기

입력 2016-03-04 18:08
수정 2016-03-05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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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일 일요일 밤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대학 근처를 친구와 걷다가 영화 전문 서점으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핑크빛 네온사인이 빛나는 창문 안쪽에는 장 콕토 등 영화인들의 얼굴이 크게 박힌 책 표지가 정면을 향해 있었다. 그 서점을 스쳐 지나가며 문득, 앞으로도 계속 책을 만들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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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목요일 오후 3시.

“작은 서점을 차리면 어떨까. 출판 작업도 할 수 있는”이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2014년 8월 17일 일요일

서점을 한다면 ‘문학 중심 서점’으로 해 보자는 생각을 굳혔다. 콘셉트는 ‘깊이가 없는 서점’.

8월 23일 토요일

깊이가 없는 서점, 즉 너무 수준이 높지 않고 책과 독서에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서점. 짙은 갈색 책장, 창문 쪽에 설치될 독서 공간으로서의 나무 바, 일정 주제를 정한 후 큐레이션을 한 10~15종 정도의 책 목록 작업, 소박한 도서 리뷰 잡지…. 지금 고요서사에서 실현된, 혹은 실현할 예정인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이날 다 떠올랐다.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서울 연희동의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예상했듯 높은 월세 장벽을 실감.

6월 7일 일요일

‘고요서사’라는 이름 확정. 서점, 책, 이야기 등의 뜻을 지닌 ‘서사’라는 말은 박인환 시인이 운영했던 서점 ‘마리서사’에서 따오기로 이미 정해 뒀었다. 그 앞에 붙일 말을 고민하다 개인 블로그 타이틀로 오랫동안 썼던 ‘고요’라는 말을 떼 왔다. 좋은 책과 독서는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게 도와준다는 의미를 떠올리며.

7월 12일 일요일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해방촌카페 ㅇㅎㅎ’와 공간 제휴 결정.

7월 31일 금요일

출판사 퇴사.

9월 7일 월요일

가구와 수서 목록 등 본격적인 서점 준비 시작.

10월 15일 목요일

임시 오픈 기간 중 처음으로 책 판매.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이언 매큐언 ‘속죄’. 사업자 등록할 때 임의로 적은 개업 날짜와 꼭 같은 날 첫 판매가 이뤄져 신기하기만 했던.

12월 29일 화요일

헌책 코너 ‘두 번째 방문’의 첫 기획전 시작. ‘두 번째 방문’이란 서점에서 팔려 나간 책들이 다시 서점을 방문했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 첫 기획전 주제를 ‘해방촌 이웃의 책장’으로 정하고 해방촌에서 카페, 독립 서점, 식당 등을 운영하는 이웃들의 헌책을 받아 진열하고 판매. 뮤지션, 편집자 등 직업별 혹은 조직이나 지역별 등으로 매번 헌책 기획전의 주제를 정할 예정.

2016년 2월 11일 목요일

소설가 한강의 목소리를 타고 영국 BBC방송에 고요서사 이야기가 소개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2월 15일 월요일

KBS ‘TV 책을 보다’ 프로그램을 고요서사에서 촬영했다.

2월 29일 월요일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적 같은 일들을 겪으며 사는 감사한 나날이긴 하지만, 하루에 책이 단 한 권이라도 팔리길 늘 기도하는 불안한 날들이기도 하다.
2016-03-0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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