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욱 ‘칠하다’전, 12월 4일까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그의 그림은 마크로스코의 평면회화, 혹은 단색조 회화를 떠올리지만 실은 보기에만 그럴 뿐 내용은 많이 다르다. 옻이 물감 대신 칠해졌고, 캔버스가 아니라 자체 제작한 금속 화판을 사용했다. 회화, 설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허명욱(50)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12월 4일까지 열린다.작가는 “마무리 작업으로 작품의 한쪽에서는 시간이 정지하지만 다른 면에서의 자연적 시간은 계속 소멸을 향해 진행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양화의 일반 페인팅 도료가 아닌 한국 옻칠을 택하게 된 200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가는 인간이 설정한 인위적인 시간성과 작품 제작 단계에서 개입하는 시간성, 이들이 함께하는 총체적인 시간성을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마음의 근원을 찾아 수행하듯 수십개의 다른 색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켜켜이 채워나가며 내면의 정화를 시도한다”는 작가의 사유의 끝은 어디일까. 가장 공들인 작품 ‘무제’를 보면 그가 얻은 답은 ‘공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에는 평면 회화 뿐 아니라 폭 30㎝ 가량되는 옻칠 용기 수백여개를 쌓은 설치작품도 있다. 제각기 다른 성별, 직업, 연령을 가진 180명에 의해 닳고 때가 묻어 돌아 온 옻칠 용기와 자연에 의해 변화된 옻칠 용기를 함께 놓은 것으로 ‘자연에 조응한 조형성’ 혹은 ‘시간’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들여다 보게 해 준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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