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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더미 속에서 찾은 ‘고려백자’ 국내 최초 대거 출토

흙더미 속에서 찾은 ‘고려백자’ 국내 최초 대거 출토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2-04-25 10:59
업데이트 2022-04-2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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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궤 매납유구 전경. 문화재청 제공
보궤 매납유구 전경. 문화재청 제공
고려 시대 백자를 생산하던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에서 1000년 전 만들어진 왕실 제기(제례에 사용하는 그릇과 관련 도구들) 20여 점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됐다. 중국 송나라 때 출판된 ‘삼례도’, ‘고려도경’에 등장하는 고려 왕실의 제기가 발견되면서 통치철학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25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있는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에서 10세기 후반~11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20여 점이 양호한 상태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고려시대 유적에서 이처럼 온전한 형태의 제기가 다량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제기 높이는 30∼34㎝이다.

이번에 발견된 보(簠·벼와 조를 담는 그릇), 궤(簋·기장을 담는 그릇) 등의 왕실 제기는 중국 송나라 때 출판된 ‘삼례도’와 ‘고려도경’ 등의 문헌에 등장한다. 보는 외면은 네모난 형태, 내면은 원형의 형태이고 궤는 반대로 외면은 원형, 내면은 네모난 형태다. 보, 궤와 더불어 갑발(匣鉢·가마 안에서 재나 불길이 닿지 않도록 도자기에 씌우는 큰 그릇) 등을 포함해 다량의 유물이 양호한 상태로 출토돼 향후 고려도자 연구는 물론 왕실의 통치철학도 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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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제기. 문화재청 제공
백자제기. 문화재청 제공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중국의 자기제작 기술이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한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가마로 꼽힌다. 이곳에서 고려 초인 10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전반까지 백자를 생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벽돌로 지은 가마와 길이 83m인 진흙 가마 등도 있다.

1980년대 세 차례 발굴 조사에 이어 지난해 6월부터 남쪽 구역을 제4차 발굴조사 중인데 조사결과 건물지와 답도(통로), 계단, 저장구덩이, 폐기장 등 백자 가마 관련 시설이 확인됐다. 고려도자의 가장 이른 형태인 선해무리굽 백자완(밑바닥 접지면이 둥근 띠 형태로 돼 있는 사발)을 비롯해 각종 제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출토됐다.
거북이 장식 제기뚜껑. 문화재청 제공
거북이 장식 제기뚜껑.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흙더미 속에서 찾은 유물들은 이곳이 고려 초기부터 백자를 생산하며 왕실에 제기를 공급한 주요 생산지임을 알려 준다. 도자제기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던 고려 왕실은 국가제사를 지낼 때 사용됐다. 1059년(고려 문종 13년)에는 제기도감(祭器都監)까지 설치해 관리했다. 문화재청은 “해당 지역 일대가 왕실 제기를 공납하기 전 선별작업을 하던 곳이거나 임시 보관소, 혹은 공납 후 불필요한 제기를 일시에 폐기한 장소였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문화재청과 용인시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를 향후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에 대한 종합정비계획의 기초 자료로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 왕실 제기의 제작과 납품 과정은 물론 용인 서리 유적의 역사적 의미를 재확인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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