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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알아야 어휘력 좋아진다고?…“그렇지 않다”

한자 알아야 어휘력 좋아진다고?…“그렇지 않다”

입력 2016-10-05 07:29
업데이트 2016-10-0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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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교과서 한자어 68%는 뜻풀이 도움 안 돼”

문자생활에서 한자를 함께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한자를 알아야 우리말의 뜻을 좀더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논리를 댄다. 우리말 단어의 70% 정도가 한자어기 때문에 개별 한자의 뜻을 익히면 국어 실력도 동시에 늘어난다는 얘기다.

과연 한자는 우리말 어휘력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를 분석해보니 한자의 훈(訓·풀이)을 조합해 낱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한자어는 3분의1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는 초등학교 3∼6학년 사회·과학·도덕 교과서에 쓰인 한자어 1만1천23개를 단어와 한자 어원의 상관성에 따라 4가지 무리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 단어 의미와 한자의 훈 사이의 상관성이 높은 단어는 32%인 3천467개였다고 5일 밝혔다.

교사(敎師·가르치는 스승)·수거(收去·거두어 감)·읍내(邑內·읍의 구역 안) 등이 대표적인 단어로, 훈이 모두 고유어이고 훈을 엮으면 단어의 뜻을 알 수 있는 경우다.

반면 훈이 한자어로 이뤄져 또다른 한자어를 익혀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거나 음과 훈이 같아 의미 파악에 도움이 안 되는 단어가 5천65개(46%)로 훨씬 더 많았다.

예를 들어 감독(監督)은 ‘볼 감, 감독할 독’의 두 한자로 구성됐는데 훈이 해당 단어의 반복이다. ‘감독할’이라는 한자의 뜻이 한자어 ‘감독’의 뜻풀이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때는 사전에서 ‘감독’을 찾아 ‘일이나 사람 따위가 잘못되지 않도록 살펴 단속함’이라는 뜻을 외워야 하거나 아니면 한자를 익히기 전에 이미 감독의 뜻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대표는 “한자를 배우기 전이라도 한자어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거나 낱말을 사용하면서 점차 그 의미를 알게 된다고 추론하는 게 마땅하다”며 “이는 한자어 이해에서 한자 지식이 필수 요건이 아님을 뜻한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한자 어원과 상관성이 낮거나(16%) 아예 없는(6%) 단어로, 전체적으로 68%가 한자의 훈과 음을 알더라도 낱말의 뜻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사회(社會)는 ‘모일 사, 모일 회’라는 한자의 뜻에서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오랫동안 그 낱말을 써온 성인이라면 억지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학생에게 한자를 이용해 낱말의 의미를 가르치는 경우와는 다르다고 이 대표는 지적했다.

우주(宇宙), 실천(實踐), 방송(放送) 등은 한자의 훈과 낱말 뜻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다. ‘宇宙’의 한자 뜻을 그대로 풀면 ‘집과 집’, ‘實踐’은 ‘열매를 밟다’, ‘放送’은 ‘놓아 보냄’이다. 훈에서 의미를 끌어내려다가 오히려 틀린 뜻풀이로 빠질 위험마저 있다.

이 대표는 “한자를 통해 ‘부모’나 ‘학교’ 같은 말의 뜻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체험으로 나름의 개념을 만든 뒤 나중에 한자와 연결해 낱말의 뜻을 다시 한번 다지는 것 뿐”이라며 “한자 지식은 어느 정도 한국어 체계를 내면화한 뒤 한자 어원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갖춰도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런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 ‘한자 지식이 한자어 이해에 주는 효과’를 7일 서울교대에서 열리는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학술대회에서는 이창덕(경인교대)·이병규(서울교대)·이성하(한국외대)·김경일(상명대)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서 교과서 한자 병기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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