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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성곽’ 정읍 고사부리성, 시대별로 색다르게 수리됐다

‘백제 성곽’ 정읍 고사부리성, 시대별로 색다르게 수리됐다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9-05-01 17:38
업데이트 2019-05-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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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조선시대 축성방식 달라
‘돌→흙→흙+돌’ 세 차례 개축
지리적·전략적 중심지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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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고사부리성의 전경. 문화재청 제공
정읍 고사부리성의 전경.
문화재청 제공
백제 때 축조된 전북 정읍 고사부리성(사적 제494호)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개축된 것으로 드러났다. 고사부리성은 백제 때 지방 통치의 중심이었던 오방성(五方城) 중 하나인 중방성(中方城)으로 사용된 이후 1765년(영조 41년)까지 읍성으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1일 정읍시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전라문화유산연구원에 따르면 정읍시 고부면 성황산에 위치한 고사부리성의 성벽 일부를 조사한 결과 백제시대 이후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시대별로 각각 수리한 양상이 드러났다.

백제시대 성벽은 3~4개 구간으로 나눠 외벽과 내벽을 쌓은 뒤 그 사이에 다듬은 돌이나 흙으로 채우는 협축 기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하나의 성돌을 6개의 성돌과 서로 맞물리도록 축조한 육합쌓기 방식도 확인됐다. 육합쌓기는 고구려 성벽의 축성기법이라는 점에서 백제 석성과 고구려의 관련성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연구원은 강조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전반적으로 백제 석축성벽의 전통이 유지됐고, 추가적으로 성 내부의 물을 배출하기 위해 성곽 일부를 파내서 만든 수구시설 2기가 확인됐다. 백제와 통일신라 시대에는 석축성이었으나 고려시대가 되면서 성벽은 토성으로 변했고, 조선시대에는 흙과 돌을 모두 사용한 성곽이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유물로는 다리가 세 개 달린 삼족토기, 항아리, 접시, 병 등 다량의 백제 토기와 고구려계 토기로 알려진 암문(暗文) 토기 등이 나왔다. 연구원 관계자는 “고사부리성이 성벽의 성돌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고 견고함와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축성방법을 동원해서 축조됐을 뿐 아니라 백제에서 조선시대까지 장기간 이용한 성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면서 “고사부리성이 백제 때 지방통치의 핵심적인 성으로 조성된 이래 지리적·전략적 중심지로서 중요하게 다뤄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9-05-0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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