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정록 31일까지 ‘섬의 생명나무’전
푸른빛이 감도는 밤바다를 배경으로 하얗게 불을 밝힌 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나무는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인 양 빛의 알갱이들을 조심스럽게 열매처럼 품고 있다. 도대체 나무의 정체는 무엇일까. 조심스럽게 ‘포토샵’ 등 눈부신 기술 발전이 낳은 합성 사진은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대답은 단호하다. “바람이 드문 새벽녘과 일몰 때 서너 시간씩 버티고 기다려 찍은 연출 사진입니다. 포토샵 같은 기술의 힘을 빌리진 않았죠. 필름 카메라와 산더미 같은 짐을 이고 조수 한 명과 제주 곶자왈 곳곳을 돌았습니다.”작가는 “커다란 나무에 오로지 서치라이트, 플래시를 4시간 넘게 비추면 나무가 전구를 켠 듯 판타지를 연출한다”고 말했다. 그가 나무에 천착한 것은 2006년 겨울부터.
“우연찮게 나무에 빛을 비추다가 나무가 하얗게 스스로 발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스쳐 가듯 생명력을 본 것이죠. 이때부터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영매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는 31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신세계갤러리에서 이어지는 개인전 ‘섬의 생명나무’(Tree of Life in Island)’전에선 우리나라 남해에 주로 서식하는 예덕나무를 소재로 15점의 신비로운 사진을 선보인다. 원시의 생명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동안 주로 사용하던 감나무를 포기하고 달걀 모양의 잎을 가진 아담한 예덕나무를 모델로 삼았다. 이 나무는 하늘과 땅, 현실과 피안을 이어 주는 오브제가 됐다. 작가는 나무에 흰색 물감을 칠해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했다. 나무 한 그루를 골라 차에 실은 뒤 이곳저곳을 돌며 촬영했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어떤 세계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4-03-03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