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나에겐 평생 세 명의 은인이 있다”

“나에겐 평생 세 명의 은인이 있다”

입력 2014-08-26 00:00
업데이트 2014-08-26 02:2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독보적 수채화 작가 정우범 화백 새달 2일까지 ‘판타지아’ 개인전

1990년대 후반 국내 화단의 독보적 수채화 작가로 등극한 정우범(왼쪽·68) 화백은 “평생 세 명의 은인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뚝뚝 굵은 빗방울을 떨어뜨리려는 찰나였다.

이미지 확대
정우범 화백
정우범 화백


이미지 확대
‘판타지아’ 연작.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수채화로 표현했다.
‘판타지아’ 연작.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수채화로 표현했다.


“광주교대 부속 초등학교에서 6년간 교사로 일하다 박차고 나와 닥치는 대로 그림만 그리던 때였어요. 전업작가로 나서니 마음은 홀가분한데 수년간 벌이가 없어 불안했던 때였죠.”

그때 작가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국내 태권도 1호 박사인 고(故) 이기정씨. 이씨의 소개로 세계 태권도대회가 열린 미국 올랜도에서 첫 해외 개인전을 열었다. 이를 인연으로 미국 워싱턴의 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고 잠시 미국에서 활동했다. 당시 금호재단 고(故) 이강재 부이사장과의 만남은 작가를 미술계에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광주의 선술집에서 우연히 동석한 이 부이사장은 그의 그림에 푹 빠졌고, 1년간 지역 최고 월간지였던 ‘금호문화’ 표지에 그림을 그리도록 배려했다. 작가가 무심코 그려온 강원 춘천의 은주사 스케치가 도움이 됐다. 주위의 질시와 함께 스타 작가란 꼬리표는 이때부터 따라다녔다. 마지막 후원자는 아내다. 작가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광주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사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적성에 맞을 리 없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진 않았으나, 연필과 붓을 손에서 놓지 않던 그는 무작정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3년간 말리던 아내가 지쳐 허락했고 화가가 될 수 있었죠.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내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여행 좋아하고 그림만 그리던 제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작가의 작업도 삶과 마찬가지로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반복이다.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고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곳곳에 스며들게 한다. 이때 캔버스의 수분이 넘치면 화장지를 얹어 색감을 조율한다. 이렇게 수차례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피가 모세혈관을 타고 캔버스를 흐르듯 깊고 풍부한 색감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밀도 높은 색감의 표현을 위해 최근 아크릴 물감을 섞어 쓰기도 한다. 작가는 순간적 감흥이 시키는 대로 물에 적신 고급 수채화 용지에 유화 붓을 짧게 잘라 만든 갈필 붓으로 춤을 추듯 툭툭 치면서 작업한다. 위도 아래도 없이 완성된 추상적 이미지는 자연의 신비를 드러낸다.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이어지는 개인전 ‘판타지아’에는 작가가 그린 30여점의 수채화가 나왔다. 500호짜리 야생화 대작을 통해 “수채화는 크기에 제한이 있다”는 편견도 깼다. 작가는 최근 타이완 쑨원미술관에서 초대전 제의를 받았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이다. 그는 “매일 뒷산을 산책하는데 지천에 깔린 풀꽃들이 아침과 저녁이 모두 다르더라. 모두 귀한 생명이고 작품의 대상”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4-08-26 20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