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미술관 ‘예술만큼 추한’展
현대적 혼돈·불안 강렬히 표현동물·붕괴 건물·뭉개진 육체 등
불쾌함 속 실존적 고민 드러내
“美·醜 고정관념 돌아보는 계기”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예술만큼 추한’전에 출품된 서용선의 작품들. 이번 전시는 아름다움과 대치되는 ‘추’의 감각이 어떻게 예술 작품 속에서 발현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불결하고 하찮으며 참담한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는 서용선의 회화 ‘개 사람’은 불편할 정도로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자국으로 채워진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진한 감동을 안긴다. 이근민 작가의 ‘매터 클라우드’는 동물의 지방덩어리를 뭉쳐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이근민의 작품 ‘The Portrait of Hollucination’. 작가가 환각을 겪으면서 본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긴 작품으로 징그럽고 흉측하지만 우리의 본성을 건드리는 강렬함을 지니고 있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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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나 선망을 일으키는 아름다움의 상대적 가치인 추함은 대개 불쾌함이나 반감을 일으키는 형상들로 여져져 왔다. 그러나 고전적인 세계관에서 볼 때 강렬하고 극단적이어서 추하다고 여겨졌던 고딕이 훗날 미적 표현양식의 하나로 정의됐던 것처럼 추함은 동시대 미술에서 새로운 조형의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대미술관이 올해 첫 기획으로 마련한 ‘예술만큼 추한’전은 아름다움과 대치되는 ‘추’(醜)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대적 혼돈과 불안을 강렬하고 저항적인 시각언어로 그려낸 작가 13명의 회화, 조각, 영화, 설치 작품 50여점으로 전관을 채웠다.
구지윤의 작품 ‘얼굴-풍경’. 부서진 건물이거나 뭉개진 얼굴 같은 이미지는 억눌리고 불안한 현대를 살아가는 군중이자 개인을 대변한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서울대미술관 제공
심승욱은 스스로 속해 있는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며 경직된 구조 속에서 소비되는 인간의 감정에 주목한다. 짓다 말고 버려진 미완성의 구조물 같은 설치작품 ‘부재와 임재 사이’에는 우리의 상처와 기억이 혼재돼 있다. ‘안정적 불안정성-고립주의의 환상 속에서’는 4개의 확성기에서 유명 정치인들이 각자의 주장을 담은 연설이 흘러나오는 작품이다.
붓이 아닌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오치균 작가의 1980년대 후반 회화작품 ‘인물’, ‘홈리스’는 비참할 정도로 뭉개지고 일그러진 인체를 담고 있다. 최영빈이 그린 인체는 더욱 기괴하다. 다각도의 오묘한 공간과 배경 위에 뒤틀린 몸에 다리와 팔이 아무데나 붙어 있고 입술, 혀, 이빨이 그려진 인체 형상으로 존재적 불안감과 내적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몽타주가 나열된 이강우의 사진작업 ‘생각의 기록’은 역사 속에 놓인 개인의 내면과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스페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누엘과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가 공동으로 각본을 맡아 제작한 흑백 무성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는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우며 불쾌감을 자극하는 영상들로 채워져 있다. 눈을 면도칼로 사정없이 자르는 잔인한 장면을 시작으로 구멍 난 손 위에 개미 떼가 들끓고 잘려 나간 채 여전히 움직이는 손목 등 보기에도 끔찍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전통적인 영화의 순차적 스토리텔링 양식에 반발한 최초의 초현실주의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프랑스계 작가 올리비에 드 사가장의 ‘변형’(2011)은 자신의 몸에 물감을 떡처럼 바르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꽂아 넣는 등의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작품이다.
프랑스 앵포르멜 미술의 대표화가 장 뒤뷔페는 “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사람들이 흔히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만큼이나 아름답다”고 했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 짓기를 부정했던 그의 1954년 작품 ‘아버지의 충고’도 선보이고 있다.
정영목 서울대미술관장은 “추함과 아름다움을 습관적으로 규정한 측면이 있다”면서 “낯설고 불편한 작품들을 통해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생각해 보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5월 14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7-03-1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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