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통해 발견한 삶의 의미

죽음 통해 발견한 삶의 의미

입력 2010-03-06 00:00
수정 2010-03-0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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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새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이정희의 친구, 서인주가 죽었다. 1년 전 폭설이 퍼붓던 겨울 새벽 미시령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인주를 사랑했던 미술평론가는 죽음을 자살로 단정짓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 탁월한 그림 작품, 불행한 개인사, 드라마틱한 죽음 등을 근거 삼아 예술가적인 열정에 의한 자살로 미화한다. 그러나 얼핏 불행해 보일지라도 삶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확신했기에 스스로 삶을 포기했을리 없다고 믿으며 정희는 친구의 죽음을 실체적으로 밝히고자 직접 나선다.

1년 전 정희는 한 남자를 간절히 죽이고 싶었으나 차마 행하지 못했다. 대신 자신이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자신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왼쪽 손목에 주저흔만 세 개 남겼을 뿐 실패에 그친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정희가 사랑했던, 예술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것을 가르쳐준 인주 외삼촌의 죽음이 있다.

한강(40)의 새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삶의 곳곳에 포진해 있는 죽음의 비의(秘意)와 맞닥뜨리며 힘겹지만 물러섬 없는 투쟁을 전개한다. 무기는 한강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 그리고 먹그림의 시각적 이미지와 생의 기원, 우주의 신비에 대한 천체 물리학적 사유, 진실을 좇아가는 미스터리식 서사 얼개다.

작품을 구상하고서 책이 나오기까지 4년 6개월이 걸렸다. 한강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던 환자가 갑자기 스스로 숨을 쉬는 바람에 환자의 호흡과 인공호흡기의 호흡이 부딪치는 것인 ‘브레스 파이팅(Breath fighting)’에서 소설이 시작됐다.”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서서 숨과 숨이 맞부딪치는 팽팽한 긴장의 순간으로 점철된 삶에 대해 사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차라리 죽어서 끝내고 싶은 통증을 겪는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가 무릎이 짓이겨진 채 뜨거운 배로 바닥을 밀고 간다.’는 큰 울림 속에서 마친다. 시인 남진우가 폴 발레리의 시편 ‘해변의 묘지’ 중 유명한 구절인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빌려썼듯 한강 역시 강렬한 삶의 의지를 표현하는 데 발레리에게 의탁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0-03-0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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