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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건축의 신비?… 왜곡·연출로 덧입혀진 그 실체를 증명하다

동양사상·건축의 신비?… 왜곡·연출로 덧입혀진 그 실체를 증명하다

입력 2012-04-28 00:00
업데이트 2012-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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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 김경일 지음/바다출판사 펴냄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김경일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서현 지음, 효형출판 펴냄). 두 책을 덮고 나면 귀에서 환청이 들린다. “데끼놈!” 위대한 선조의 얼과 숨결이 담겨 있다고 누누이 배우고 가르쳐온 것들을 뒤집어 봐서다.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추상적인 신화 대신 구체적인 역사를 보자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쯤 된다. 그럼에도 마냥 불편하지만도 않은 것은 독자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는 점이다. ‘선수’들 사이에선 일부 알려진 내용이지만 독자와 함께 상상하고 추리해 보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유가의 핵심인 덕치(德治)의 덕(德)은 갈 행(行), 열 십(十), 눈 목(目), 마음 심(心)으로 이뤄졌다. 열 개의 눈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고 행동하라는 말이다. 문제는 이 눈의 주인이 권력자라는 점이다. 권력자가 없어도 권력자가 곁을 지키는 듯, 알아서 행동하라는 뜻이다.
유가의 핵심인 덕치(德治)의 덕(德)은 갈 행(行), 열 십(十), 눈 목(目), 마음 심(心)으로 이뤄졌다. 열 개의 눈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고 행동하라는 말이다. 문제는 이 눈의 주인이 권력자라는 점이다. 권력자가 없어도 권력자가 곁을 지키는 듯, 알아서 행동하라는 뜻이다.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같다고 하기엔 2% 부족하다. 살을 더 붙이자면 ‘동양고전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중화사상으로 인해 오염되고 뒤틀린 전통’이란 입장이다.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의 저자 이름 ‘김경일’을 보면 아마 낯익다 싶을 독자도 있을 것이다. 환청이 들리는 게 무리만도 아닌 게, 1999년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펴냄)로 유림을 벌컥 뒤집어놨던 한국인 갑골문 박사 1호이자 상명대 중문과 교수다. 저자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비유한다. “클래식 복서에게 무에타이 발길질을 해댔다.” 동양고전이라 일컬어지는 경전을 중심으로, 그러니까 절제된 풋워크와 스윙을 통해 복싱이 폭력이 아닌 예술임을 주장하는 것이 기존의 연구라면, 자신의 연구는 피와 땀이 튀기는 원시적 폭력성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우아함은 잊으라는 거다. 저 언급에서 드러나듯, 책은 동료나 친구들에게 얘기를 건네듯 써놔 읽기에 어렵지 않다.

책을 펴면 일단 4장 ‘기상천외한 정치적 레토릭’부터 읽길 권한다. 동양문화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역사적 배경설명이어서다. 중국 고대 상(商)나라 왕의 계보는 무정-조경-조갑-형신-강정-부을-문무정으로 이어지는데, 저자는 건국초기 어정쩡한 타협을 타파하고 중앙집권적 왕권 강화에 목숨을 건 조갑의 쿠데타와 이에 대항해 부을 시대에 이뤄지는 무당과 연계된 기존 토속권력자들의 반동적 복고운동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 부분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쉽게 풀어 쓴 것인데, 정치적 급변과 거기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동을, 갑골문에서 ‘제’(帝)자를 어떻게,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를 대들보 삼아 추적해 들어간다.

이렇게 고대 중국 사회에 대한 워밍업이 끝났다면 이제 처음으로 돌아와 동양문화의 뿌리, 공자를 만날 차례다. 저자는 복서가 아니라 무에타이 선수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재보는 잽을 던지느니 바로 상대방의 숨통에다 킥을 날린다. 바로 온 천지사방 사람들이 찬탄해 마지않는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다. 자기계발과 처세술을 다루는 온갖 책들뿐 아니라, 공자를 봉건제국의 이데올로그라고 손가락질해야 할 좌파들마저 ‘옛 동양고전 읽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소.’라며 고르는 책 가운데 하나가 논어다. 이유가 뭘까. 배우고 익히는 것을 이처럼 기꺼워하는 데다, 논어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좋은 말씀들 중에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한 얘기를 제일 앞에다 배치할 정도니 공자는 정말 성인답구나 하는 감탄이다.
정치의 정(政)자에 정(正)이 있으니 정치는 올발라야 하는 것인가. 갑골문을 보면 적의 진지(口)를 압박하는 보병(止) 2개 군단이 주둔한 모양새다. 정치의 속성은 전쟁이다. 그러면 싸움을 뜻하는 글이 왜 바르다는 뜻으로 옮겨갔을까. 해방자를 자처하는 전쟁의 레토릭을 떠올려 보면 된다. 그러고 보니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MBC의 정명(正名)을 얘기했다. MBC를 토벌하겠다는 뜻이었다.
정치의 정(政)자에 정(正)이 있으니 정치는 올발라야 하는 것인가. 갑골문을 보면 적의 진지(口)를 압박하는 보병(止) 2개 군단이 주둔한 모양새다. 정치의 속성은 전쟁이다. 그러면 싸움을 뜻하는 글이 왜 바르다는 뜻으로 옮겨갔을까. 해방자를 자처하는 전쟁의 레토릭을 떠올려 보면 된다. 그러고 보니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MBC의 정명(正名)을 얘기했다. MBC를 토벌하겠다는 뜻이었다.


저자는 피식 웃는다. 갑골문에 기반한 해석은 이렇다. “왕실 제사를 진행하는 궁궐에서 제례 절기에 따라 제반 절차를 실제로 실습하는 과정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춘추전국시대 때 묵가에서 유가 무리들을 일러 제사상을 쫓아다니며 단물만 빨아먹는 ‘상갓집의 개’라 부르며 경멸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사실 후대 유학자를 괴롭힌 공자의 개인사 가운데 하나는 공자가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비유적으로 쓰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들판에서 결합한 것이다. 제사를 그토록 강조한 공자건만, 야합의 결과물이었기에 정작 공자는 제사 지낼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다. 많은 학자들은 원시난혼과 모계사회 풍습이 남아 있던 당시에 야합은 별스럽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 곤혹스러운 것은 공자가 밥 먹고 화장실 갈 때조차도 성인의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고 굳게 믿은 후대 유학자들이었다. 말씀이야 해석을 달리해 분칠하면 그만이지만, 어느 날 밤 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원나이트 스탠드를 즐긴 결과물이 공자라는 역사적 사실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세상만물의 이치를 꿰뚫은 성인(聖人)은 유가의 목표다. 갑골문을 찾아보면 큰 귀(耳)가 달린 사람(人)에게 입(口)이 자그맣게 붙어 있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성인의 풍모다. 저자는 그런데 고대 중국에서는 듣는다는 것은 곧 하늘의 뜻을 듣는다는 뜻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들었는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들었다고 주장해 하늘의 뜻을 독점한 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이다.
세상만물의 이치를 꿰뚫은 성인(聖人)은 유가의 목표다. 갑골문을 찾아보면 큰 귀(耳)가 달린 사람(人)에게 입(口)이 자그맣게 붙어 있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성인의 풍모다. 저자는 그런데 고대 중국에서는 듣는다는 것은 곧 하늘의 뜻을 듣는다는 뜻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들었는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들었다고 주장해 하늘의 뜻을 독점한 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이다.


공자 역시 이게 걸림돌이었다. 야합이 흔한 풍속이었다지만 그건 하층민 얘기고, 지배층은 그렇지 않았다. 출세욕이 강렬했던 공자는 지배계층의 문화를 깊이 연구해 그 속에 편입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지배계층의 문화란 요즘 말로 ‘상위 1% 계층의 이너서클 파티’라 부를 수 있는 제사다. 공자가 어릴 적부터 제사놀이에 심취했었다는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해서 학습(學習)이란 끝없는 배움의 열정이 아니라 권력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추파다. 나도 공부 많이 해서 잘 아는데 왜 안 끼워주느냐는 호소다.

저자가 공자와 노자의 철학을 비교하면서 노자는 “집요한 사색가”이지만 공자는 “사유라 이름짓기조차 초라”하다고 평하는 이유다. “혈족의 끈이 없었기에 당시 주류사회에서 벼슬을 할 수는 없었던” 사람, “파티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그 파티 멤버로는 참가할 수 없는 사람”, “바로 파티에서 서빙하던 사람”, “당시 귀족들의 주류문화에 심취한 제례 마니아”,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제례 평론가”에 불과했던 사람, 그게 공자의 실체라는 것이다.

저자는 동양고전을 통해 “인간의 가치나 정신의 원류를 찾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고 한다. 저자가 겨냥하는 것은 중화사상이다. 그런 순수한 마음이 실은 “중국인들과 중화사상이 오랫동안 만들어낸 해석에 충실”한 것은 아닌지 되묻는 것이다. 저자는 갑골문을 통해 중화주의가 덧칠한 신화를 벗겨내고, 권력의 간계가 스며든 핏빛 역사를 복원하고픈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다시 읽힌다. 나는 “너희가 말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로. 책에는 공자의 논어뿐 아니라 주역과 노자 등에 대한 다양한 얘기가 실려 있다. 갑골문을 통해 붕(朋), 도(道)처럼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여러 한자들을 달리 풀이해 주기 때문에 읽는 맛도 상당하다. 1만 7800원.

2012-04-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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