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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권력 속에서 ‘사람의 길’을 묻다

경쟁·권력 속에서 ‘사람의 길’을 묻다

입력 2012-07-14 00:00
업데이트 2012-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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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작가 강태식 ‘굿바이 동물원’· 허관 ‘문 없는 문으로… ’ 출간

신춘문예보다 확실하게 거액의 상금을 챙겨 주는 신문·문예지의 당선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배고파하며 문단 데뷔를 노려온 ‘늙은 문학청년’들의 재기가 느껴진다. 특히 올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강태식(왼쪽·40)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의 주인공 김영수는 마치 작가 자신 같다. 아니, 무서운 돈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기상청에 근무하며 현대문학의 신인상을 받은 허관(오른쪽·43)의 역사 장편소설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세조라는 인물을 통해 비정하게 반복되는 역사의 문제를 다루며, 인간은 어떻게 무엇을 용서할 수 있을까를 돌아본다.



강태식씨
강태식씨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는 강태식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부터 우선 들여다보자. 일단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읽고 나면 그 뒤를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15년 사이에 쌈지마저 탈탈 털린 한국인의 요즘 심사들이 대체로 울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1997년에 대대적인 명예퇴직이 있었고, 2008년에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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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관씨
허관씨
1997~2008년 사이에 ‘88만원 세대’라는 한국적 족보를 가진 신세대가 양산되기도 했으니, 명퇴를 당한 직장인이든, 한창 일할 나이에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20대든 이 문장에 마음이 쭉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빨간 대야 가득 마늘이 담겨 있다는 것이 두 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다시 1970년대가 상기된다. 김영수는 36살에 명퇴를 당하고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빈 곳이 없어 감정 처리를 어정쩡하게 한 탓에 마늘을 까면서 ‘마늘이 맵다.’며 울고 있다. 아내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개시하고, 그는 반지하 방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빨간 대야에 담긴 마늘을 깐다. 마늘을 까다가 곰 인형 눈을 붙이고, 바비인형의 눈썹을 붙이다가 10대처럼 본드도 마신다.

본드에 취한 그는 아내가 ‘한번 하자.’고 간청을 해도 들어줄 수가 없다. 종이학은 더이상 정성이 아니라 1개당 20원인 상품이다. 사람처럼 살기 위해 그는 본드를 버리고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업한다. 직원으로? 아니, 마운틴고릴라로.

이 지경이 되면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세렝게티 동물원에는 동물은 없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사람답게 살기 위해 회사 구조조정의 악역을 포기한 사람, 1억원 포상금에 눈이 어두운 남파공작원을 피해 달아난 또 다른 남파공작원 등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의 흉내를 낼 뿐이다. 하마, 악어, 사자도 다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위해 그들은 자신이 뒤집어 쓴 동물의 탈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간다.

마운틴고릴라인 김영수는 이제 한 시간에 한 번씩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 때때로 12m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올라가 파란 버저를 누른다. 5000원의 보너스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농사짓고 그 수확으로 배를 불리던 농경사회와 달리 돈 벌어 쌀을 사야 하는 화폐경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왜 이리 밥벌이가 눈물 나고 안쓰러우냐 말이다.

남파간첩인 연락원 동무는 사시미칼로 피칠갑이 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한다. “회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돈”이라고. 돈이 숭상받는 사회에 소속돼 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회색의 디스토피아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울컥울컥한데, 소설은 의외로 낙관하며 끝난다. 불필요해 보이는 대목들이 적지 않지만 군더더기가 많은 것이 또한 인생이고 보면, 소설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현대문학의 신인상을 받은 허관 작가는 소설책과 불교 서적을 즐겨 보다가 블로거가 됐고, 인기 블로거로 소설을 써 보라는 주변의 부추김에 부응하다가 소설가로 데뷔한 경우다. 처음에는 원고지 100장짜리 단편소설을 준비하다가, 쓰면서 깨달음을 얻어장편소설로 개작하게 됐다고 했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즉위한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강원도 상원사에 갔던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허 작가는 “세조처럼 권력을 위해 혈육을 죽이고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초등학교 무렵부터 다 알게 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우리가 역사를 똑바로 알고 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충남 안면도의 기후변화감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내놓은 그의 역사 인식을 잘 살펴볼 일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2012-07-1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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