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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인사·전략 부재가 ‘실패한 영웅’을 만들었다

무능한 인사·전략 부재가 ‘실패한 영웅’을 만들었다

입력 2012-07-28 00:00
업데이트 2012-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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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김영사 펴냄

130권짜리 중국 통사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초패왕 항우를 ‘자고 이래 첫 번째 인물’로 평가했다.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승승장구해 천하 제패를 눈앞에 두었던 ‘역발산 기개세’(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을 만하다)의 영웅. 하지만 유방과의 4년간에 걸친 초한전쟁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삶에는 흔히 ‘크게 흥했다.’와 ‘크게 몰락했다.’는 상반된 묘사가 함께 붙는다. 엇갈린 평가와 달리 여전히 중국인들로부터 최고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 항우. 그는 도대체 왜 실패했을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불굴의 패기와 의지로 진을 멸망시킨 항우는 당대의 숙적 유방보다 훨씬 앞서 간 난세의 영웅이었다. 진의 주력군을 완전히 평정한 그 유명한 ‘거록 전투’며 천하 제패의 꿈을 다졌던 ‘팽성 전투’만 보더라도 유방은 항우에게 한참 뒤졌었다. 그런데 마지막 ‘오강 전투’에서 ‘사면초가’란 최후의 말과 함께 항우를 패배와 자살로 몰아간 원인은 무엇일까.

‘항우 강의’(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김영사 펴냄)는 유년기부터 오강의 최후까지 ‘사기’에 바탕을 두고 항우의 모든 것을 훑어 패인을 해부한 책으로 눈길을 끈다. 국내에선 ‘사기강의’로 유명한 저자가 명쾌하게 추려 세운 패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유방과 달리 수를 제대로 읽지 못한 정치적 유치함과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도 군사를 수동적으로 썼던 군사전략의 부재, 그리고 제 능력을 과신한 채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성격이 그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특출한 게 없었던 유방에 비해 항우는 탁월한 군사전문가였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유방의 곁엔 늘 모사가와 책사들이 모여들었다. 항우는 따르던 인재를 간수하지 못해 흩어지게 만들고, 심지어는 배반과 배신의 아픔을 거듭 맛봐야 했다. 유방 측에 붙어 간첩 행위를 한 삼촌 항백을 단죄하지 않은 것처럼 인정에 치우친 무능한 인사는 그 패착의 으뜸이다. 불같은 성격은 참모와 부하들을 두렵게 만들어 작은 잘못에도 부하들은 유방에 투항하곤 했다. 그에 비해 유방은 군사와 인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터럭 같은 미관말직의 의견도 기꺼이 수용하는 노회한 인물이다.

강력한 군사력과 패기, 용맹으로 단숨에 천하를 장악했지만 잇따른 측근의 배신과 정치력 부재, 정책 실패는 결국 그를 패자로 전락시킨 치명적 고리들인 셈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구석구석에 배치해 놓은 항우의 색다른 인간미는 흥미롭다. 전투에 지친 군사와 백성을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말자며 유방에게 일대일 결투를 제안한 것이며 오강 전투에서 패한 뒤 ‘재기’를 기약하자며 강을 건너 피하라는 부하의 말을 물리친 것, 자살 직전 현상금 붙은 제 머리를 옛 부하였던 유방의 장수에게 기꺼이 맡긴 일…. 그래서일까. 저자는 실패한 영웅인 그를 ‘겉과 속이 같은 타고난 영웅’으로 평가한다. 1만 5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2-07-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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