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이 되어버린 ‘4·19’

‘5·16’이 되어버린 ‘4·19’

입력 2012-12-15 00:00
업데이트 2012-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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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을 묻다】천정환·권보드래 지음 천년의 상상 펴냄

역사는 단절인가, 연속인가. 아무래도 진보 쪽은 단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봉건 왕조는 8·29 경술국치일로 마감됐고, 식민 압제는 8·15 해방으로 뒤집혔다, 이승만의 독재는 4·19에 철퇴를 맞았고, 4·19의 숭고한 이상은 군홧발 5·16에 짓밟혔다. 10·26에 유신의 심장이 거꾸러지고 마침내 ‘서울의 봄’이 왔으나 야만적 5·18은 시대를 할퀴었다…. 이렇게 숫자로 압축된 특정 날을 주된 변곡점으로 삼아 휙휙 꺾이는 그래프를 그려 놓고선 거기다 역사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그런데 이 그래프, 혹시 수난극복의 한민족사를 변주한 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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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군. 흔히 5·16 때문에 4·19가 훼손됐다고 하지만, 저자들은 4·19 안에 5·16이 있었고,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잉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5·16 쿠데타군. 흔히 5·16 때문에 4·19가 훼손됐다고 하지만, 저자들은 4·19 안에 5·16이 있었고,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잉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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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시위대.  흔히 5·16 때문에 4·19가 훼손됐다고 하지만, 저자들은 4·19 안에 5·16이 있었고,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잉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4·19 시위대. 흔히 5·16 때문에 4·19가 훼손됐다고 하지만, 저자들은 4·19 안에 5·16이 있었고,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잉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현실로 조금 더 내려와 보면 이렇다. ‘쑥부쟁이’ 막말을 쏟아낸 김지하는 어떤가. 물론 ‘죽음의 굿판’ 때보다 영 반응이 신통치 않다. 생명, 문명 운운하면서 초월적 사상을 내세울 때부터 사람들은 이미 그에게서 ‘보수’의 냄새를 맡아 버렸기 때문이다. 분노 어린 반박보다 얕은 한숨만 나오다 만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면 안병직, 김문수, 이재오는 어떻게 봐야 하며, ‘주군’의 피가 채 식기도 전에 박근혜 진영으로 달려가 버린 DJ 가신들은 또 어떻게 봐야 하는가.

당사자들은 ‘결단’이라 하겠지만, 세상은 대개 ‘변절’이라 부른다. 결단과 변절 간 거리는 멀다. 시간이 갈수록 거리는 더 벌어진다. 변절이 아니라 결단임을 주장하려면, 점점 더 독한 험담을 늘어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결단과 변절 간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는지 모른다. 좋으냐 나쁘냐는 가치판단 문제만 뺀다면, 이쪽 편이냐 저쪽 편이냐는 진영 논리만 뺀다면 닮아 있는 모습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1960년을 묻다’(천정환·권보드래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를 읽어 나가면서 눈에 띄는 것은 ‘레짐’, ‘망탈리테’, ‘역능’ 같은 단어들이다. 인물, 사건, 역사에서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런 단어들을 두고 저자들은 복잡한 설명을 늘어놓기보다 아주 대중적으로 접근 가능한 압축적인 한마디를 던져 뒀다. 바로 “5·16이 되어 버린 4·19”다.

역량 부족을 드러낸, 패배해 버린, 미완성으로 끝나 버린 4·19가 아니라 4·19 안에 이미 5·16이 있었다는 얘기다. 역사적 사건을 두고 제일 속 편한 소리는 공과를 따지라는 말이다. 애당초 공과는 한 덩어리여서 딱 잘라 평가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던가. 내 안에 너 있다는 고백치곤 별로 낭만적이지 못한 까닭에 이 책에는 보수는 물론 확실한 피아 구분을 선호하는 진보들에게도 영 마뜩지 않을 내용이 가득하다.

저자들은 국문학자. 그래서 문학작품과 잡지 등 텍스트상의 담론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김승옥, 이청준, 최인훈, 이어령, 함석헌, 김현, 백낙청 등 기라성 같은 지식인들과 그들의 글이 줄줄이 불려 나온다. 텍스트 분석은 두텁게 읽어 내는 작업이어서 매우 흥미롭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텍스트에 몰입하는 바람에 길을 잃을 위험성도 다분하다. 쉽게 말해 머리가 너무 좋아 탈이 나는 경우다. 그런데 저자들은 텍스트와 현실 사이를 교묘하게 잘 오간다. 역사에 대한 감수성을 잃지 않아서다.

저자들은 책 도입부에서 4·19 신화를 벗겨 낸다. 4·19는 오늘날 대학생의 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중고등학생, 주부, 도시의 부랑민을 배제한 결과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저자들은 대학생이 4·19를 낳은 게 아니라 4·19가 대학생을 낳았다고 본다. 거기다 이 대학생들은 혁명 뒤 재빨리 학원으로 철수하고 질서회복을 내걸었다.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선의의 독재의 필요를 논의”했던 이들이었고, 그랬기에 “5·16에 대해 올 것이 왔다며 판단을 유예”했던 당사자들이어서다. 어쩌면 이승만이라는 늙고 매력 없는 가부장 대신 젊고 당찬 가부장을 열망한 것이 4·19였을지 모른다. 그 열망이 5·16의 본질이었을 것이고.

이런 대전제 아래 저자들은 발걸음을 쭉쭉 늘려 간다. 함석헌, 이어령, 박정희, 최인훈을 묶어 “상호 보완적인 동지”라고 부른다. 어떻게? “공통적으로 후진국 콤플렉스에 몸부림치는 민족주의자-나르시스트”이자 “문화적 종족본질론자”이기 때문이다. 아예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사’와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은 “그 주제와 인식 구조에서 놀라운 상동성을 갖는다.”고 해뒀다.

장준하의 ‘사상계’도 과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사상계는 영국 잡지 ‘엔카운터’에 실린 기사를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했다. 엔카운터는 문화자유회의라는 국제 단체의 기관지였는데, 이 자유회의는 “비공산주의 좌파의 집결처”였다. 동시에 “창립 초기부터 미중앙정보국(CIA)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1967년 사실상 해체”된 단체였다. 그렇다면 사상계는 박정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던가. 미국의 지원 없이는 독립과 번영이 불가능하다고 본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지 않았을까.

“한국 비평사의 기린아”로 불리는 김현은 또 어떻던가. 그의 “초기 산문들은 약간 놀랍다.” 박정희 특별보좌관으로 채용돼 국민교육헌장을 만든 관변 철학자 박종홍을 깊이 사숙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약관의 나이로 모든 한국 전통을 총합 정리하려는 이 불문학도를 두고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해 향가로부터 판소리를 한 줄로 꿰어 전체로 이해하려는 김현”과 “윷놀이·돌담 등속에서 한국 문화와 역사 전체를 파악해 내는 이어령”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해 뒀다.

몇 가지만 뽑아내서 그렇지 저자들은 그토록 대별되는 것처럼 보이는 산업화와 민주화 같은 이항대립들이 실은 서로에게 깊게 스며들어 있었음을 책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길어올려 뒀다. 이 작업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돌아가야 할 원점은 4·19”란 표현에 녹아 있다. 4·19 안에 담긴 5·16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인식이 어떻게 행동으로 표현되느냐는 문제다. 책 제목에 “묻다”란 표현이 들어가 있고, 책 내용도 끊임없는 질문이지만, 단순히 묻는 게 아니라 대답을, 행동을 촉구하는 것처럼 읽히는 이유다. 2만 8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12-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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