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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술의 비밀… ‘靈氣’로 보면 보인다

우리 미술의 비밀… ‘靈氣’로 보면 보인다

입력 2013-04-27 00:00
업데이트 2013-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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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의 탄생/ 강우방 지음, 글항아리 펴냄

이 책 읽은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의 ‘금은보화전’을 보길 권한다. 제목 그대로 번쩍대는 걸 다 모아뒀는데, 그냥 휙 보고 나오면 삼성의 힘이겠거니 싶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가면 달라보인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국보 89호인 9.4㎝ 길이의 낙랑금제허리띠. 낙랑 최고의 유물이라는 평답게 화려하다. 금이기도 하거니와 자잘한 금 알갱이 수백, 수천 개를 붙여 용무늬를 만들어낸 정교한 누금(鏤金) 기법에 입이 쩍 벌어진다. 이쯤이면 18번 레퍼토리가 나온다. 최첨단 현대 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우리 조상님들의 탁월함. 식상한 이런 질문, 대답 말고 다른 질문 하나 해보자. 용 무늬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게다. 그런데 왜 하필 자잘한 구슬을 붙여 만드는 방식을 택했을까. 시간이 남아돌아서? 멋져 보일 거 같아서? 내 재주가 이 정도요 하고 자랑하려고?

수월관음의 도상은 고려시대에 가장 화려하고 크게 제작된다.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온 세상을 밝히는 생명의 지혜를 얻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글항아리 제공
수월관음의 도상은 고려시대에 가장 화려하고 크게 제작된다.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온 세상을 밝히는 생명의 지혜를 얻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글항아리 제공


‘수월관음의 탄생’(강우방 지음, 글항아리 펴냄)은 그 대답으로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을 내놓는 책이다. 국립경주박물관장, 이화여대 교수 등을 거치면서 불교미술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던 저자는 그림이든 조각이든 뭐든 우리 미술의 핵심엔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영기’가 있다고 본다. 영기란 “우주에 충만한 생명력 혹은 정신이나 마음이며, 다른 말로는 도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처음 나오는 고사리의 싹이 C자 모양으로 둥글게 말려나오는 형태다. 그래서 식물 줄기의 덩굴, 바다 위 물결, 하늘 위 흘러가는 구름 같은 단순한 문양에서 용, 봉황처럼 복잡한 생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무늬들이 실은 영기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수월관음의 왼발 아래를 분석하면서 저자가 직접 그리고 칠한 그림. 소로 추정되는 기이한 인물이 업은 병에 보주, 쌍각, 산호 같은 신물이 담겨 있고, 여기서 나오는 영기가 파도 형태의 영기를 거쳐 연꽃으로 연결된 뒤 이 연꽃이 관음보살을 떠받치게 된다. 이 모든 형상들이 고사리의 새싹, 그러니까 C자형으로 나타나는 영기 무늬의 변형이라 설명한다. 글항아리 제공
수월관음의 왼발 아래를 분석하면서 저자가 직접 그리고 칠한 그림. 소로 추정되는 기이한 인물이 업은 병에 보주, 쌍각, 산호 같은 신물이 담겨 있고, 여기서 나오는 영기가 파도 형태의 영기를 거쳐 연꽃으로 연결된 뒤 이 연꽃이 관음보살을 떠받치게 된다. 이 모든 형상들이 고사리의 새싹, 그러니까 C자형으로 나타나는 영기 무늬의 변형이라 설명한다.
글항아리 제공
저자는 이 영기화생론으로 동서양을 다 포괄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엔 기운이 가득하고 그 기운을 하나의 생명으로 모아내는 신령스러운 그 무엇이 바로 물, 여성, 달이라는 관념은 일종의 신화로서 모든 문화권에 공통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월관음도를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에다 견준다. 수월관음은 이미 이름에서부터 물과 달을 끼고 있으며 지극히 여성적인 자태로 묘사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품에서 탄생해 조가비를 타고 나타나는 비너스도 같은 맥락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비너스, 이란의 달의 신 아나히타, 인도의 비슈누 등은 모두 물의 신”이다. 그래 영기화생론은 우리 “그림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초역사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도구가 된다.

제목에서 보듯 저자의 주요 분석 대상은 일본 다이도쿠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수월관음도다. 영기화생론의 관점에서 병이나 항아리, 접시 같은 도상을 만병(滿甁)이라 고쳐 부르고, 치마 뒤 육각형 무늬는 귀갑문이 아니라 육각수문(六角水文)이라 고쳐 부르는 등 영기화생론에 맞춰 자기가 고안한 개념을 쭉쭉 나열하는데 흥미진진하다.

가장 매력 포인트는 저자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도, 중국, 일본의 미술품에다 그리스정교의 마리아상까지 끌어들여 설명하고, 자신의 논지를 증명하기 위해 모든 작품들을 세부적으로 확대해서 꼼꼼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미술사 연구는 문헌 앞에서가 아니라 작품 앞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답게 이 세부사항들을 직접 그리고 칠하기도 했다. 그 설명 자료들이 고스란히 책에 다 담겼다. 이 책을 시작으로 탱화, 청자, 벽화, 불상, 기와 등을 다룬 시리즈물 10권을 낼 예정이라 한다. 꼭 챙겨볼 만한 시리즈가 될 것 같다. 3만 5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4-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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