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배반/김준형·윤상헌 지음/뜨인돌/280쪽/1만 3000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정사회, 진정성, 국격, 권리, 평화’ 등의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이런 가치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속내는 감춘 채 언어의 외형만 치장하려는 권력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책의 핵심이라 할 문장이다. 표현은 어려워도 내용은 쉽다. 공정과는 거리가 멀고, ‘을의 권리’ 따위는 아예 없는 한국 사회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는 얘기다. 왜? 정치, 경제 등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좋은 의미의 단어를 선점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상황을 호도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언어 고유의 의미는 퇴색하고, 정치적 논리에 따라 오용되고 만다.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권력의 논리가 담긴 채 변질된 의미로 굳어진 말들을 두고 저자들은 ‘언어의 배반’이라고 부른다.
책은 정치학자(김준형)와 언어학자(윤상헌)가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을 빌려 ‘배반한’ 언어들에 대해 짚는다. 이들이 끄집어낸 화두와 던진 질문들은 대단히 유효한 것들이다. 유별난 강조는 되레 그 부재를 드러낸다는 착상 또한 기발하다. 한데 유효한 질문들을 적절한 해법으로 이끌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예컨대 첫 번째 장의 공정사회가 그렇다. 책은 양반 이지도와 다물사리라는 여성의 소송을 예로 들며 노비제가 횡행했던 조선 사회의 불공정성을 꼬집고 있다. 아울러 노비제라는 큰 틀에서 사건을 보지 못하고, 절차의 공정성에만 천착한 판관의 실수 또한 작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는 소수의 자본가가 부를 독점하고, 기층 민중은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한다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유일 텐데, 우리 사회 전체가 조선처럼 노비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제가 논리 비약적이라면 결론 또한 제 방향을 잃고 만다.
그런 면에서 책은 이념적이다. ‘언어의 배반’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양비론적 시각이 좀 더 해결책에 가까운 것 아닐까.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3-06-15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