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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8>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8>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

입력 2014-04-01 00:00
업데이트 2014-04-0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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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야만을 규정하는 불편한 잣대들 무의식에 존재하는 인간성을 비판하다

한곳에 오래 살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무엇이 있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좋은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바뀐 것들 대부분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 사실들이 모여 역사가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해본다. 역사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런 명분 아래 그냥 배워 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슬픈 열대’의 저자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사실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직무 수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사회의 기능 체계 속에 이미 한 자리를 확보했다는 느긋함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특수한 성격이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시대의 많은 청춘들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그도 청년기에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있었다. 고3 때 선생님이 법률 공부가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권하자 2주간의 요점 정리만을 공부하는 것으로 쉽게 법학시험을 끝낼 수 있어서 법학부에 등록하고 철학 학위도 준비했다. 학위를 받고 그리 어렵지 않게 최연소로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한 번 만에 통과했다. 전도유망한 철학교수로 안착할 수 있었으나 철학에서 배우고 훈련했던 논리들이 철학적 논리의 완성도를 위해서만 쓸모 있다는 생각에 철학과 멀어지게 됐다. 그가 철학과 멀어졌다 해도 그의 사상적 토대가 철학에서 온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세 스승이라고 표현한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에서 체험과 실재 사이의 통로는 불연속적인 것이며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총합 안에서 우선 체험을 거부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에 대한 회의를 통해 체험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이런 생각은 미국의 민족학자 로버트 로위가 쓴 ‘미개사회’를 읽고 확고해졌다. 철학적 훈련에 갑갑함을 느끼던 레비 스트로스는 이 책에서 철학적 지식이 아닌 관찰자의 직업적 참여가 있어야만 그 의미를 보존할 수 있는 원주민 사회의 실제 체험과 만나며 자신의 길이 민족학에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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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주 한우리독서토론 논술책임연구원
최영주 한우리독서토론 논술책임연구원
‘슬픈 열대’는 그가 42세 되던 해(1950년)에 출판됐다. 자신이 어쩌다 민족학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에서부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문명의 광기에 소심하지만 집요하게 저항했던 것을 거쳐 브라질 원주민과의 만남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 그리고 유네스코 문화사절로 파키스탄과 인도를 여행한 내용 일부를 정리한 방대한 책이다. 출발에서 귀로에 이르기까지 총 40장으로 구성된 목차만 보면 지구 사방을 여행한 경험담처럼 보인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여행기로 보아도 좋지만 그가 사람들의 뇌리에 던진 충격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마감하게 한 원자폭탄과도 같아 사상서라 부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KDC 분류 체계 중에서 기호 985대 남아메리카 지리에 분류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문명과 야만을 임의대로 구분하여 자기들이 속한 곳을 문명이라 부르고 그렇지 못한 곳을 야만이라 칭하며 맘껏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리적 파괴와 인간 살상을 목도하며 인간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은 지식인들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자신의 특성에 맞게 시작했고 이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들은 지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사유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다. 스트로스는 유대계 프랑스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했던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 유럽 학자들을 구해 내기 위해 계획한 ‘신사회 조사 연구원’의 초청을 받는 형식으로 브라질에 가게 됐다. 민족학에 대한 열정으로 브라질 탐험을 떠난 것 같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많은 영화와 다큐, 체험기, 사진, 회화 들을 통해 유대인들의 박해와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브라질로 향하는 여정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처해 있던 당시의 위기 상황을 생각하노라면 그가 현상 너머에 있는 심층에서 보편적 구조를 발견하고, 인간의 우열을 가르는 것이 매우 잘못됐다고 결론짓게 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로스는 인간정신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구조적 측면을 통해 인간정신을 탐구하고자 했다. 인간이 구조라 불리는 계획된 회로에 따르는 존재라는 주장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제시하는 구조들이 무의식의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 구조를 특정 문화집단이나 특정 개인의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속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탐구하는 인간이 구조주의에 의해 주체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행위가 여전히 존재하는 지금 현실에서 차별하는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필요하고도 절실하다. 그래서 비판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불릴 자격을 얻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정리해 저장한 것을 손쉽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는 스트로스가 자신의 경험과 마주하기 위해 20년 걸린 이 책을 존중하며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다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브라질 원주민 부족의 낯선 생활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놀라움을 느끼고 싶다면 해당 부분만 읽으면 된다. 목차를 보면 쉽게 고를 수 있다. 스트로스의 문학적 자질을 음미하고 싶다면 선상 노트만 보아도 된다. 물론 꼼꼼하게 전체를 읽는다면 장마다 빛나는 문장들 속에서 지금 여기의 나에게 꼭 필요한 여러 의미를 만날 수 있다. 그가 묘사하는 원시세계를 머릿속에서 동영상화하며 읽으면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스트로스는 엘리트의 길을 무리 없이 간 사람이었다. 철학 교수 자격을 얻는 데 어려워하지도 않았고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 학기를 맞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일에서 불안을 느꼈다. 불안을 다독이며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자신이 품었던 회의를 간과하지 않았다. 의심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인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고 인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체에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왔다. 자신의 내부에서 신호를 보내는 사인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위한 지적 탐색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행복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나이 든 사람들은 청춘을 가능성이 많은 세대라 부러워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불안하다고 한다. 불안한 청춘이 불안을 달래기보다는 불안과 마주했던 사람의 궤적을 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용기를 내어 보았으면 좋겠다.
2014-04-0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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