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투과한 빛처럼 사랑도 서로 다른 길로

프리즘 투과한 빛처럼 사랑도 서로 다른 길로

이슬기 기자
입력 2020-09-17 17:24
수정 2020-09-18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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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손원평 지음/은행나무/268쪽/1만 3500원

도심 한복판 효고동 거리. 같은 건물, 각각 지하와 13층에서 일하는 남녀는 점심시간 중 회사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누군가와 마주칠 염려가 없는, 걸터앉기 좋은 자리가 있는 빈 건물의 1층.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기로 결심한 예진과 영화 후시녹음 업체에서 일하는 도원은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신다. 도원은 생각한다. ‘그녀와의 만남이 좋은 점은, 둘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고 더이상 발전될 가능성도 없다.’(22쪽) 예진도 같은 마음일까.

‘프리즘’은 전작 ‘아몬드’로 일본서점대상을 받은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프리즘’은 서로 다른 네 사람이 만든 관계의 빛깔 이야기이자, 온도에 대한 이야기다. 차가우리만치 산뜻한 도원의 온도와 달리, 예진은 점점 뜨거워진다. 거리를 좁히려는 각고의 노력이 무위가 돼 상심한 예진은 오픈 채팅방의 오프라인 모임에 나갔다가 호계를 만난다. 호계는 효고동 거리 ‘이스트 플라워 베이커리’라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어느 날 도원과 에진, 호계, ‘이스트 플라워 베이커리’의 주인 재인은 연극 티켓을 계기로 만난다. 이날, 넷은 각기 다른 온도를 품게 된다.

이들 큐피드 화살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각자의 마음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 이해 가능한 영역이다. 잠 못 이루는 밤 오픈 채팅방에 접속하는 사람과 오랜 투병 끝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 자체로 사랑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일, 헤어진 남편과 꾸준히 만나 죽은 반려동물을 애도하는 일처럼. 소설은 누군가에 대해서는 연인이 되고 싶어 하고, 다른 누군가는 친구로 여기는 건 결국 마음의 방향과 빛깔이 다를 뿐이라는, 프리즘을 투과한 다채로운 빛의 영역임을 섬세하게 그린다. ‘얼굴을 덮은 마스크의 면적만큼 우연이라는 마법이 줄어든’ 시절에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찬란한 사랑 얘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9-1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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