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속 석탑… 쓰라린 역사 품었네

박물관 속 석탑… 쓰라린 역사 품었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0-11-12 17:54
수정 2020-11-1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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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약탈당했다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돌아온 고려 경천사십층석탑. 신간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는 경천사십층석탑을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 8점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경인문화사 제공
일제시대 약탈당했다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돌아온 고려 경천사십층석탑. 신간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는 경천사십층석탑을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 8점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경인문화사 제공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손정미 지음/경인문화사/260쪽/1만 8000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로비에는 13m에 이르는 고려 경천사십층석탑이 있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충목왕 시대에 만든 탑으로, 기황후 세력인 강융과 원나라 환관 고용봉의 시주로 세웠다. 안정감을 주는 기단부와 팔작지붕을 얹은 탑신부의 조형미가 빼어나다. 그런데 이 석탑은 왜 경천사가 아닌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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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는 탑의 사진을 접하고 욕심을 냈다. 그는 1907년 1월 ‘고종이 하사한 탑’이라는 거짓 문서를 내밀고 무장 일본군 200여명을 동원해 반대하는 주민을 진압하고 탑을 해체해 자신의 집으로 실어갔다. 당시 대한매일신보 기사로 이런 만행이 외국에 알려졌지만 다나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1916년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총독이 독촉하자 1918년 마지못해 탑을 조선에 보냈다. 1995년 중앙박물관이 복원 작업을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다.

책은 일제강점기와 현재까지 8점의 국보급 문화재를 둘러싸고 벌어진 비화를 실었다. 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 막사발의 사연을 비롯해 부여 부소산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반가사유상에 관한 가짜 판정 소동, 세계 인쇄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귀중한 고려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논란, 고려청자 가운데 창의적인 유약을 사용한 고려 철채청자에 관한 이야기 등이 생생하다.

저자는 “문화재만으로도 아름답고 귀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감동이 몇 배가 넘는다”고 말했다.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읽고 나면 문화재를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20-11-1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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