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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닮은 게임… 게임 같은 전쟁

전쟁 닮은 게임… 게임 같은 전쟁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0-11-19 17:28
업데이트 2020-11-20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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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매튜 토머스페인 지음
진달용 옮김/한울아카데미/368쪽/5만 6000원

위 사진은 중동 지역에 파견된 미군들의 실제 작전 장면, 아래는 전쟁 게임 ‘메달 오브 오너’에서 게이머들이 문을 부수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쟁을 다루는 매체들의 시각적 언어는 놀랍도록 닮았다. 한울아카데미 제공
위 사진은 중동 지역에 파견된 미군들의 실제 작전 장면, 아래는 전쟁 게임 ‘메달 오브 오너’에서 게이머들이 문을 부수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쟁을 다루는 매체들의 시각적 언어는 놀랍도록 닮았다.
한울아카데미 제공
9·11 이후 美 청소년 전쟁 게임 인기
고조된 위기 활용 전쟁·테러 소재화
법적·도덕적 제약 벗어나 공포 해소
전쟁 정책 향 정치적 신뢰 고착화

2011년 5월 2일. 미 해군 특수전단 네이비실의 한 팀이 파키스탄의 저택에 은신해 있던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미군에게 9·11 테러 이후 주범의 사살에 이르기까지는 무려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유희적 전쟁문화로 재구성되는 데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불과 닷새 뒤에 ‘카운터 스트라이크’, ‘쿠마 워’ 등의 밀리터리 게임이 이 사건을 배경으로 제작돼 배포됐다. 사실 게이머들에게 빈라덴의 죽음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게임을 통해 빈라덴의 사살을 반복해 왔다. 밀리터리 게임 문화에선 이 역사적 사건조차 기시감이 드는 ‘경험된 미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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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게임 문화와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게임이 현실에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미군들의 훈련에 활용되는 ‘아메리카 아미’(2002)나 ‘풀 스펙트럼 워리어’(2004) 등이 그 예다.

‘전쟁 게임’은 이처럼 현실과 게임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상호작용하는지를 살폈다. 밀리터리 슈팅 게임이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요인은 무엇인지, 9·11 이후 밀리터리 슈팅 게임이 설계한 디자인과 게임 전략이 미국의 군사력과 전쟁 정책에 관한 정치적 믿음을 어떻게 고착화하고 있는지 등을 집중 분석한다.

오늘날 게임산업은 경제 규모에서 여느 문화산업을 압도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9·11을 기점으로 전쟁 게임이 특히 인기를 끌게 됐다. 미국인들 사이에 위기감이 고조되자 게임 회사들은 전쟁과 테러를 게임산업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이들이 만든 전쟁 게임 속에서 게이머는 막강한 화력을 법적·도덕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끊임없이 난사한다. 전쟁 게임이 9·11로 초래된 충격과 공포에 대한 유희적 해독제로 기능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게임용 조이 스틱을 들고 있고, 참모들의 노트북 화면엔 ‘콜 오브 듀티’라는 게임이 띄워져 있다. 전쟁이 게임으로 유희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의도가 담긴 패러디 사진으로 보인다. 한울아카데미 제공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게임용 조이 스틱을 들고 있고, 참모들의 노트북 화면엔 ‘콜 오브 듀티’라는 게임이 띄워져 있다. 전쟁이 게임으로 유희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의도가 담긴 패러디 사진으로 보인다.
한울아카데미 제공
게임이 재현하는 군사적 폭력이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는 비판은 ‘닌텐도 전쟁’이라 불리는 걸프전(1990) 때도 있었다. 미 국방부는 이 ‘깨끗한 군사적 개입’을 TV에 맞도록 꾸준히 다듬었고, 서구의 뉴스 매체들은 이를 전 세계로 생중계했다. 공격 차량과 로켓에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된 전쟁의 이미지들은 ‘미사일 커맨드’, ‘배틀존’ 등의 게임 속 파괴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났다.

전쟁 게임들은 미군이 치르는 전투 시나리오를 게이머의 유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활용한다. 여러 게이머가 참여하는 상호작용 플레이 방식은 헤게모니의 즐거움과 전쟁 유희 감정을 만들어 냄으로써 게임의 상업적 성공을 이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성적이고 군사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가 정체성까지 추동해 낸다. 이 과정에서 ‘게이머’는 테러리스트에 대항하는 병사이자 게임의 서사를 이끄는 엔진이 된다. 집단적 악몽 속에서 일하며 국가적 열망을 만들어 내는 수호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게임 속에서) 고도의 무인화된 장비와 사이보그 지상 병력에 명령을 내리지만 이런 기술은 결국 우리에게 총구를 돌릴 뿐”이라고 밝혔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2020-11-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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