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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철저히 외면한,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

우리가 철저히 외면한,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2-02-17 20:26
업데이트 2022-02-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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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잔병 멍에·진영논리 덧씌워
사회적 낙인·편견에 시달리는
천안함·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피해자 되기 간단치 않은 한국
폭력성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김승섭 지음/난다/268쪽/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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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4일 천안함 함수가 바지선에 실려 평택 제2해군함대로 떠나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2010년 4월 24일 천안함 함수가 바지선에 실려 평택 제2해군함대로 떠나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서해에서 폭침으로 배가 가라앉고 46명의 군인이 사망한 사건. 흔히 천안함 사건을 떠올리면 여기서 멈춘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날 배가 왜 가라앉았는지에 관심을 집중했고 진영을 나눠 다퉜다. 배에서 살아남은 58명이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돼야 마땅하다.”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피해자, 결혼이주여성, 소방관 등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약자들의 건강을 들여다본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가 천안함 사건 생존 장병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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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하던 이들과 한순간에 생사가 갈려버린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세월호 생존 학생들 사이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면서도 사망한 희생자들에 가려져 주변에조차 솔직히 아픔을 털어놓기 어려웠고,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갇혀 오히려 더 상처받는 시간들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아픔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이들에게 치유의 시간을 주는 우리 사회를 두 사건 피해자들은 지금도 바란다. 사진은 2010년 4월 7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존 장병들이 환자복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늘 함께하던 이들과 한순간에 생사가 갈려버린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세월호 생존 학생들 사이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면서도 사망한 희생자들에 가려져 주변에조차 솔직히 아픔을 털어놓기 어려웠고,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갇혀 오히려 더 상처받는 시간들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아픔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이들에게 치유의 시간을 주는 우리 사회를 두 사건 피해자들은 지금도 바란다. 사진은 2010년 4월 7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존 장병들이 환자복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천안함 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며 숭고하게 산화한 것으로 기억되지만 58명의 생존 장병들은 갖은 낙인과 편견,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2018년 생존 장병 24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91.3%가 한 번이라도 PTSD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58.3%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고 이 가운데 29.1%는 시도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 가운데 2001~2005년 PTSD 진단을 받거나 치료받은 사람이 13%였던 것에 비해 매우 높다.

이들을 특히 괴롭힌 건 ‘패잔병’이라는 낙인이었다. 배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잃은 이들에게 사망자의 시신 확인, 유품 수습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고, 국군수도병원에서 밤마다 헌병 조사를 받으며 배가 가라앉은 이유를 추궁받고 복무 태만이 있었던 건 아닌지 거듭 자책해야 했다. 김 교수는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 만에 최원일 당시 천안함 함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 이들에게 패잔병 멍에를 지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꼬집는다. 환자복을 입은 장병들은 동료를 지키지 못한 나약한 몸들로, 전투복을 입은 최 전 함장은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비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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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군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너네 둘이(생존 장병들) 붙어 있지 마, 천안함이라 께름칙해”, “너 때문에 배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라고 모욕을 당하거나 정신질환 치료를 받는 ‘불완전한 몸’이라는 편견, 트라우마로 승함 경력 점수를 채우지 못해 진급을 못 하는 등 주변의 차별도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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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해경해난구조대(SSU)와 해경이 침몰된 세월호를 잠수수색하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2014년 4월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해경해난구조대(SSU)와 해경이 침몰된 세월호를 잠수수색하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의 시간이지만 어딘가 기시감이 크다. 김 교수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의 기억도 꺼냈다. 단원고 학생 325명 가운데 살아남은 75명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을 잃고도 ‘운이 좋았다’는 반응에 가려졌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너는 어느 편이냐’를 따지는 진영의 리트머스지 같은 두 사건의 피해자들이 가진 상처에 공통점을 발견했다. “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는 것과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편향적 사고가 만연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천안함을 옹호하기 위해 세월호를 비하하고, 세월호를 옹호하기 위해 천안함을 외면한 시간들이 꽤 오래 이어지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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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하던 이들과 한순간에 생사가 갈려버린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세월호 생존 학생들 사이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면서도 사망한 희생자들에 가려져 주변에조차 솔직히 아픔을 털어놓기 어려웠고,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갇혀 오히려 더 상처받는 시간들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아픔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이들에게 치유의 시간을 주는 우리 사회를 두 사건 피해자들은 지금도 바란다. 사진은 2014년 7월 16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도보 행진을 한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 서울신문 DB
늘 함께하던 이들과 한순간에 생사가 갈려버린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세월호 생존 학생들 사이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면서도 사망한 희생자들에 가려져 주변에조차 솔직히 아픔을 털어놓기 어려웠고,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갇혀 오히려 더 상처받는 시간들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아픔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이들에게 치유의 시간을 주는 우리 사회를 두 사건 피해자들은 지금도 바란다. 사진은 2014년 7월 16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도보 행진을 한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
서울신문 DB
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다”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이 아픔을 말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는 일, 그것이 너무 어려운 공간이라는 걸 두 사건이 미래의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조심스레 외치고 있다.

허백윤 기자
2022-02-1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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