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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보다 복불복? 몹쓸 직관 탓이죠

통계보다 복불복? 몹쓸 직관 탓이죠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2-04-28 17:10
업데이트 2022-04-2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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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 생각의 잡음
대니얼 카너먼·올리비에 시보니·캐스 선스타인 지음
장진영 옮김/김영사/616쪽/2만 5000원

잘생긴 외모는 긍정적 평가로
같은 능력도 제각각 다른 결론
핵심 벗어난 판단과 편견 때문

경험 통한 인과적 사고는 위험
통계·데이터 기반한 판단 중요
반론에 대해 열린 자세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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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 통근 열차 폭탄 테러 사건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잔해를 치우고 있다.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슬람교로 개종한 오리건주 출신 변호사 브랜던 메이필드를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했지만, 스페인에서 진범을 찾으면서 FBI의 확증 편향 오류(원래 가진 신념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현상)가 드러났다. 로이터 연합뉴스
2004년 3월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 통근 열차 폭탄 테러 사건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잔해를 치우고 있다.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슬람교로 개종한 오리건주 출신 변호사 브랜던 메이필드를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했지만, 스페인에서 진범을 찾으면서 FBI의 확증 편향 오류(원래 가진 신념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현상)가 드러났다.
로이터 연합뉴스
2004년 3월 스페인 마드리드 통근 열차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192명이 사망했다.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은 전 세계 수사기관으로 전송됐고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그것이 오리건주 출신 변호사 브랜던 메이필드의 지문과 일치한다고 판단해 그를 체포했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메이필드는 평소 탈레반에 들어가려는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을 변호했다. 하지만 스페인 당국은 증거에 맞아떨어지는 진범을 찾았고 미국 정부는 메이필드를 풀어 줘야 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올리비에 시보니 프랑스 파리경영대학원(HEC) 교수,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 로스쿨 교수와 함께 집필한 신간 ‘노이즈: 생각의 잡음’은 이처럼 개인과 조직의 판단 오류를 분석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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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경제학’의 창시자로도 유명한 카너먼 교수는 우리가 저지르는 오류를 ‘편향’과 ‘잡음’으로 분류한다. 편향은 문제의 핵심에서 체계적으로 이탈한 판단을, 잡음은 임의적으로 분산된 판단을 의미한다. 입사 지원자의 잘생긴 외모가 면접관에게 긍정적 인상을 남겼으면 편향 때문이고, 면접관 두 명이 같은 지원자의 능력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면 잡음 탓이다. 잡음은 판단 과정에서 나타나는 원치 않는 ‘변산성’(variability)이다.

앞서 메이필드의 사례는 과학 수사도 편향과 잡음에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FBI에서 존경받는 상관이었던 첫 번째 감식관이 메이필드에 대해 확증 편향을 갖고 잘못 판단하자, 편향된 정보를 제공받아 잡음에 노출된 두 번째, 세 번째 감식관도 연이어 잘못 판단하게 됐다.

판단에 잡음이 끼어들면 결과는 ‘복불복’ 추첨처럼 변질한다. 법정에서는 판사들도 휴식 직전보다 오전이나 식사 후 가석방을 승인할 가능성이 크고, 배가 고프면 더 가혹하게 판결을 내린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직장에서 시행하는 근무 평정 다면평가도 완벽하지 못하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면 끝까지 긍정적 답이 이어지는 경향이 있어서다.

특히 몸 상태, 기분, 주변 분위기 등에 의해 좌우되는 잡음은 편향과 달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사람들은 관찰한 사건의 원인을 힘들이지 않고 생각해내려 하지만, 이런 인과적 사고로는 잡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통계적으로 사고하면 잡음이 눈에 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저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잡음을 줄이려면 판단의 목표를 정확도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경험을 활용한 인과적 사고보다 통계와 데이터를 먼저 살펴본 뒤 의사 결정의 최종 순간에 직관을 허용하고, 여러 독립적 판단을 집계할 것을 강조한다. 아울러 기업이나 조직에서 경영 판단 오류를 줄이고자 독립적 판단을 내리는 ‘잡음 감사’ 제도 도입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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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좋은 지도자는 자신감 있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갖추기보다는 오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반론에 열려 있고,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아는 인물이다. 이 책은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충실한 연구 보고서로, 심리학에 익숙지 않은 독자에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조직 성패의 본질을 짚은 석학 3인의 통찰력은 경이롭다.
하종훈 기자
2022-04-2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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