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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 자전적 이야기, 날것의 욕망 벗겨내다

날 선 자전적 이야기, 날것의 욕망 벗겨내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유용하 기자
입력 2022-10-06 22:06
업데이트 2022-10-07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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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노벨문학상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1974년 등단… 교사·교수로 재직
“체험하지 않은 허구 쓴 적 없어”
부모 삶과 죽음도 ‘칼같이’ 그려
낙태의 경험 쓴 ‘사건’ 등 문제작
가감없이 드러낸 금기에 논란도
에르노 “대단한 영광이자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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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은 6일(현지시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를 선정했다. 2019년 12월 5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에르노. 1984년 ‘남자의 자리’ AFP 연합뉴스
스웨덴 한림원은 6일(현지시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를 선정했다. 2019년 12월 5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에르노. 1984년 ‘남자의 자리’ AFP 연합뉴스
올해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82)에게 돌아갔다. 자신에 대한 탐구와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결합시킨 자전적 글쓰기로 프랑스 현대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현지시간) 에르노의 이름을 부르며 “개인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통제를 드러낸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보여 주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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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를 출간한 당시의 에르노. AFP 연합뉴스
‘남자의 자리’를 출간한 당시의 에르노. AFP 연합뉴스
에르노는 1940년 방직 공작 노동자들의 거주 지역인 프랑스 릴본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자랐다. 루앙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해 2000년까지 문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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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 ‘남자의 자리’(1984, 1984북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 ‘남자의 자리’(1984, 1984북스)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옷장’으로 등단했다. 중등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두 달 후에 있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남자의 자리’(1984)는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 기자들이 최고의 문학을 꼽아 수여하는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또한 에르노의 ‘자전적·전기적·사회학적 글’의 시작이기도 하다. 다른 대표작 ‘한 여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10여 개월에 걸쳐 쓴 기록과 같은 소설이다. 노르망디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사회적 위치의 열등함을 극복하고 싶어 했고, 딸에게 자신이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주려고 노력했던 어머니를 그렸다.
그에게 르노도상을 안긴 이 작품은 이후 에르노가 정립한 ‘자전적·전기적·사회학적’ 글의 시작점이 됐다. 에르노 자신의 아픈 기억을 소환해 써 내려간 소설 ‘사건’(2000)
그에게 르노도상을 안긴 이 작품은 이후 에르노가 정립한 ‘자전적·전기적·사회학적’ 글의 시작점이 됐다. 에르노 자신의 아픈 기억을 소환해 써 내려간 소설 ‘사건’(2000)
소설로서의 아름다움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학 작품 자체보다 시대사에 더 잘 맞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남자의 자리’는 아버지에 대해 처참한 기록을 가감 없이 썼는데, 글 자체는 굉장히 건조하다. 그야말로 ‘칼 같은’ 글”이라며 “노벨문학상이 작품이 아닌 작가에 주목한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지금과 같은 불신의 시대에 속이지 않는 작가의 글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에르노 자신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렇다”고 스스로의 작품 세계를 설명한다. 다만 인간의 욕망과 날것 그대로의 내면의 감정과 심리를 거침없이 파헤치다 보니 때론 선정적이어서 논란도 부른다. 프랑스에서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 자신의 임신 중절 경험을 쓴 작품 ‘사건’이 이런 사례다. 여성의 성, 가부장제의 폭력, 노동자 계급의 문화적 결핍과 가진 자들의 위선, 성적 억압과 차별 등 자신이 삶 속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모든 일을 문학으로 조형했다. 프랑스 기성 문단은 금기를 드러낸 에르노의 작품이 그저 폭로로 점철된 ‘노출증’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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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벤망’은 202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벤망’은 202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대중적이지 않은 작가임에도 한국에 30여편의 작품이 번역되는 등 나름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송기정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전후 프랑스 시대 부모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 세대 간 장벽, 부모 자식 간 계층 간 장벽과 차이에서 나타내는 일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세대 간 괴리 갈등을 많이 겪는 우리로선 프랑스 소설이지만 우리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문학이지만 진실을 품은 칼 같은 글이 한국 독자들에게도 보편성이라는 매력을 지녔다는 의미다.

에르노는 수상자 발표 직후 스웨덴 공영 방송 인터뷰에서 “이것은 제게 대단한 영광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게 주어진 대단한 책임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기중 기자
유용하 기자
2022-10-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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