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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지고 걷던 800m 길, 2000년 세계사 ‘다 이루었다’

십자가 지고 걷던 800m 길, 2000년 세계사 ‘다 이루었다’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2-12-21 19:52
업데이트 2022-12-22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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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특집 <하>… 예수의 마지막 모습 깃든 예루살렘

처형장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길
14개 주요 지점에 기념 교회 존재
순례객 몰려… 역사적 상황 재현도
예수 무덤, 주검 놨다던 돌판 있어
겟세마네교회, 2000살 나무 남아
유대·이슬람교 성지 중복돼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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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무덤은 무덤교회를 상징하는 곳으로 많은 순례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예수의 무덤은 무덤교회를 상징하는 곳으로 많은 순례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장 30절)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예수는 빌라도의 법정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800m 정도 되는 길을 걷는다.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동안 예수는 수많은 모욕과 조롱 속에 채찍을 맞고, 쓰러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끝내 십자가에 달려 최후를 맞는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초라하게 끝난 죄인의 삶이지만 예수의 죽음은 인류 역사를 바꾼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를 찾은 이들이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고 걷는 순례객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를 찾은 이들이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고 걷는 순례객의 뒤를 따르고 있다.
예수가 고난을 당하며 걸어간 이 길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로 불린다. ‘십자가의 길’ 또는 ‘고난의 길’이란 뜻이다. 800m에 불과하지만 지상에서 천상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향한 신성함이 깃들었다. 빌라도의 법정부터 예수의 무덤까지 역사적 의미가 있는 14지점이 있고, 지점마다 기념 교회가 있다. 이곳에서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가 갔던 길을 걷는 무리를 종종 볼 수 있다. 예수처럼 꾸미고 14년째 이 길을 쉬지 않고 돌고 있는 ‘21세기의 수도자’ 제임스 조지프도 만날 수 있다.
매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제임스 조지프.
매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제임스 조지프.
‘비아 돌로로사’는 정확한 고증이 어려워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현재의 길은 십자군 시대부터 정해져 19세기에 확정됐다.

1지점은 십자가의 행렬이 시작된 빌라도의 법정 자리다. 맞은편에는 채찍을 맞은 것을 기념한 2지점으로 십자가를 짊어진 이들이 여기서 출발한다. 십자가를 지고 쓰러진 3지점,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멈췄다는 4지점을 지나면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진 5지점을 지난다.
비아 돌로로사임을 알리는 표지판.
비아 돌로로사임을 알리는 표지판.
여인들이 울며 따른 6지점, 다시 넘어진 7지점,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말을 전한 8지점, 마지막 넘어진 9지점을 지나면 ‘비아 돌로로사’의 정점을 이루는 무덤교회에 이르게 된다. 군인들에게 옷을 뺏기고(10지점), 십자가에 못 박히고(11지점), 골고다 언덕에 세워지고(12지점), 시신이 누이고(13지점), 무덤에 묻힌(14지점) 곳이 무덤교회 안에 있어 순례객들이 몰린다.

교회를 들어가면 정면에 보이는 곳이 예수의 시체를 누인 13지점인데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고 깨끗이 닦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회 내의 다른 지점과 달리 사방이 개방형으로 누구나 기다리지 않고 마주할 수 있어 오가는 많은 순례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13지점에 입을 맞추는 순례객들.
13지점에 입을 맞추는 순례객들.
죽음과 부활의 현장인 예수의 무덤에는 특히 더 경건함이 감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30분은 줄을 서야 한다. 성인 남성 4명 정도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사각형의 공간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주검이 놓여 있었다는 돌판이 있다. 조금이라도 더 기도하고 싶은 순례객과 다음 순례객을 위해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관리자의 마음이 충돌하기도 한다.
무덤이 있는 14지점.
무덤이 있는 14지점.
성경에는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마가복음 15장 46절)라고 나와 있어 원래는 동굴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무덤만 남기고 주위를 깎아 하나의 건물처럼 만들었다.

예루살렘 성 밖에도 성지가 많다. 승천한 장소를 기념하는 예수승천교회는 이슬람이 지배하면서 모스크로 지었고, 지금도 이슬람 자본의 소유다. 다만 승천주일에는 기독교에 내줘 종파들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린다. 예수를 선지자의 하나로 여기는 무슬림들도 이곳을 방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감람산에서 보는 예루살렘.
감람산에서 보는 예루살렘.
예수가 승천한 곳을 기념한 승천교회.
예수가 승천한 곳을 기념한 승천교회.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친 것을 기념한 주기도문교회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벽에 주기도문이 적혀 있다. 겟세마네교회에는 수령이 2000년이 넘은 나무가 철책에 둘러싸여 있다. 현지 안내를 맡은 이강근 박사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올리브나무로 이 나무는 예수님을 봤을 거라고 해서 홀리 올리브나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겟세마네교회에 있는 올리브나무는 수령이 2000년이 넘어 예수의 역사를 함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겟세마네교회에 있는 올리브나무는 수령이 2000년이 넘어 예수의 역사를 함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드로통곡교회를 방문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여기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장소”라며 “예수님이 이곳에서 묶여 채찍질을 당하셨다”고 설명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인한다고 했던 내용을 따라 교회 지붕에 닭 모양 조각이 걸린 것을 볼 수 있었다.
베드로통곡교회 지붕.
베드로통곡교회 지붕.
예수가 채찍질 당하고 갇힌 독방 감옥.
예수가 채찍질 당하고 갇힌 독방 감옥.
한국처럼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교세가 약한 나라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이 기독교가 융성한 도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해서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

길이 50m, 높이 20m의 ‘통곡의 벽’ 앞에서는 종일 수많은 유대인이 울며 기도하고, 무슬림들은 금요일 낮에 성전산 모스크로 대거 몰려 무언의 무력시위를 펼친다. 이 지역을 둘러싸고 2000년 넘게 주인을 자처한 이들이 다툰 역사의 흔적은 현재의 아슬아슬한 평화로 남아 있다.
통곡의 벽에서 우는 유대인.
통곡의 벽에서 우는 유대인.
통곡의 벽은 시간과 상관 없이 항상 유대인들로 붐빈다.
통곡의 벽은 시간과 상관 없이 항상 유대인들로 붐빈다.
벽 틈새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들이 빼곡해 간절한 마음을 보여 준다.
벽 틈새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들이 빼곡해 간절한 마음을 보여 준다.
유대인들의 슬픈 역사가 서린 ‘통곡의 벽’은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마음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장소다. 서쪽벽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나라 잃은 유대인들이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 잃은 처지를 슬퍼하며 통곡했다고 한다.

꼭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가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을 담아 적고 기도하고 간다. 세상 모든 슬픔을 받아 주는 이 벽의 틈에는 더 슬퍼지지 않도록 소원을 적은 쪽지가 가득해 신에게 의지하는 인간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글 사진 예루살렘 류재민 기자
2022-12-2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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