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노(No)담’…이유는 지금과 달라

조선시대에도 ‘노(No)담’…이유는 지금과 달라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3-05-08 11:00
수정 2023-05-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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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연소답청(年少踏靑). 그림에는 양반들과 기녀들이 꽃놀이 가는 모습을 담은 풍속화로 말을 탄 기녀들 앞뒤로 양반들이 담뱃대를 들고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간송미술관 제공
신윤복의 연소답청(年少踏靑). 그림에는 양반들과 기녀들이 꽃놀이 가는 모습을 담은 풍속화로 말을 탄 기녀들 앞뒤로 양반들이 담뱃대를 들고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간송미술관 제공
조선 말 성리학계를 대표하는 간재 전우는 돌아가신 어머니 양은옥의 묘지명을 스승인 임헌회에게 지어달라고 청했다. 임헌회는 양은옥이 양반집 아녀자로 생전에 했던 훌륭했던 일들을 갖고 묘지명을 지었는데 여기에는 놀랍게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일을 유독 강조했다. 당시 양반가 여성들의 흡연이 만연한 가운데 양은옥은 올곧게 흡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받을 많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사를 전공한 하여주 박사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발행한 웹진 ‘담談’ 5월호에 ‘담배, 조선의 젠더 질서를 초월한 기호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내용을 포함해 조선 후기 담배를 둘러싼 남녀 간 갈등을 설명했다.

담배는 임진왜란 전후에 술을 깨게 한다든지, 소화가 잘된다는 등의 효과가 강조됐던 약초로 도입됐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녀노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즐기는 기호품이 됐다. 1653년 풍랑으로 조선 땅에 도착한 네덜란드 선원 하멜은 ‘조선인들은 4~5세부터 담배를 피운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

그러나 누구나 즐기던 담배에 대해 18세기 중엽부터는 사회윤리 및 질서가 무너진다는 이유로 양반 남성을 중심으로 흡연 예절 담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특히 여성 흡연은 내외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간주하고 경계했다. 남녀가 하나의 담뱃대를 빨며 공유하면 정을 도발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그로 인해 간통을 비롯한 남녀 간 문제는 모두 담배 때문이라고 낙인찍기 시작했다고 하 박사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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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시주’. 두 승려가 시주를 청하자 여성이 장옷을 머리에 올리고 시주돈을 꺼내려는 모습이다. 그 옆에는 시중을 드는 하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담뱃대를 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김홍도의 ‘시주’. 두 승려가 시주를 청하자 여성이 장옷을 머리에 올리고 시주돈을 꺼내려는 모습이다. 그 옆에는 시중을 드는 하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담뱃대를 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남녀가 대면하지 않는 흡연도 금지됐다. 담배를 피우면 침이 많이 고여 입 밖으로 떨어지고 담뱃재가 요리에 날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성은 금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양반 여성에게 흡연은 일상의 소일거리로 받아들여졌다. 정조와 순조 대에 활동했던 여성 성리학자로 남녀평등을 주장했던 강정일당(정일당 강씨)은 4살짜리 손녀에게 양반 여성으로 경계할 행동은 낮잠, 말 많은 것, 과음, 담배를 자주 피우는 것이라고 훈계했다고도 한다. 강정일당은 당시 남성들처럼 여성의 금연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담배를 많이 피우면 정신에 손상을 끼치고 오만함이 커지니 적당히 피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 박사는 “조선 후기 양반 남성들은 기호품인 담배까지도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다뤘다”라면서 “그런데도 양반 여성들은 흡연을 통해 휴식 시간을 갖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등 심리 치유라는 측면에서 계속 담배를 소비했고 이를 통해 젠더 분별에 대한 균열의 틈새를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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