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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그의 꿈] 보는 건 다… 수집도 예술이다

[그의 삶 그의 꿈] 보는 건 다… 수집도 예술이다

입력 2010-01-10 00:00
업데이트 2010-01-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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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 회장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져 보았거나 가지고 있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이들 대부분은 그야말로 취미의 차원에서, 그저 좋아서 우표를 모으고 엽서를 모으고 인형을 모은다. 자신이 모으고 있는 것들이 현실적인 재산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오직 그러한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의 수집벽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 오랫동안 수집 활동을 해온 분이 있다.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 회장. 이 분은 성공한 기업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분의 개인적인 삶에서 수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다르다. 왜 다른가 하면, 우선 이 분이 수집해 온 것들은 그 물량이나 종류의 다양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집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무수한 물건들 가운데 어느 한 종류의 물건 수집에 집착하는 게 보통인데, 유상옥 회장은 이들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 6년 전에 문을 연 강남의 사립 박물관에 가보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 분의 수집품들을 일일이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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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옥 회장 최상화. 홍순명, 캔버스에 유화(53x80㎝)
유상옥 회장 최상화. 홍순명, 캔버스에 유화(53x80㎝)


이 박물관에서는 오래 전부터 화장품과 맺은 인연으로 수집해 온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망라하는 화장품 용기들과 화장 기구, 비녀와 노리개를 비롯한 장식품 등 다양한 여성용품들을 5, 6, 7층에서 상설 전시한다. 모든 게 다 최소한 100년을 넘긴 것들로 우리나라 여성들이 사용하던 게 대부분이지만 일본 것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과 우리나라 여성용품의 차이점을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용품들의 생김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빛깔에서 차이가 난다. 동경(銅鏡) 앞에 앉아 청자와 백자로 만든 작은 화장용기를 놓고 화장하고 있는 옛 여인의 모습을 거기 그려 넣으면 여성이 아름답고자 했던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대가 변했다고 여성성이라는 마음까지 변하는 건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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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옥 회장
유상옥 회장


수집광의 내력

유상옥 회장님과 박물관 1층에 있는 커피숍에 앉아 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회장님이 수집한 커피숍 왼쪽 벽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표정의 곰인형들을 힐끗거리며, 보이차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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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박물관 전경
화장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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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 제약회사에서 경영하는 화장품 회사 CEO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한 지인이 화장품 회사는 여성을 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니 이성만으로 접근하려 하지 말고 감성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라고 그래요. 맞는 말이구나 싶어 대상을 물색해 보니 그림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림 공부를 시작했지요. 전시회도 열심히 찾아다니고.”

세상 대소사들의 시작은 다 그렇게 비슷한 모양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수집 대상을 의약품과 관련된 것으로 바꾸었다가, 화장품 업체 경영자이다 보니 화장품과 관련된 것들로 다시 바꾸었어요.”

그러다 보니 수집품들이 다양해지게 되고 점점 더 많이 쌓인 거로구나! 화장품 회사 CEO 활동을 10년 동안 성공적으로 하고 나서 21년 전에 스스로 차린 회장품 회사가 코리아나 화장품이다. 이전의 화장품 회사 경영 경험과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회사는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그때부터 수집은 취미의 정도를 넘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박물관 지하

“이 박물관 지하 1, 2층에 있는 미술관에서는 지금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책상을 비롯한 저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 놓은 전시회를 하고 있어요. 이 전시회는 제 자신이 좋아서 모은 것들을 제가 살아온 삶과 함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1982년부터 해외에 나갈 때마다 모은 종(鐘)들이 1,000여 개, 각국의 화폐들, 국내외의 유명 영화와 전시 포스터, 1960년부터 모은 연하장들, 1959년 동아제약 입사 때부터 모은 저의 수첩들, 업무일지, 경영자로 간부회의를 주재하며 쓴 회의록, 세계적인 아티스트였던 고(故) 백남준 화백의 작품 세 점 등 서재에다 간직해 온 것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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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실 3 전경
송파실 3 전경
30년 전부터 쓴 메모첩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계시다니. ‘모은다’는 단순한 말로는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박물관에서는 1년 평균 4~5회의 기획전시회를 연다. 국립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고려, 신라시대의 화장 도구 200점을 기증했다. 우리 문화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오랜 삶의 경륜에서 느끼고 쌓인 생의 철학도 들었다.

“사람의 인생은 자기 공부(수양)에 따라 완연히 달라집니다.”

“삶은 물리적인 분량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다 자신을 일치시켜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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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옥 회장
유상옥 회장
“제 나름으로 생각하는 사회 환원 방식이기도 하지만 박물관을 개관한 것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대중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박물관 소장품들이 하는 이야기를 그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지난 자취이고 우리의 현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여기에 이르러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서명해 건네주신다. 붓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서예도 하셨습니까? 물으니 다만 그저 웃으신다. 다섯 권의 수필집을 낸 문사(文士)이기도 하신 분. 도대체 모를 게 사람의 생이다. 이 분에게서 또 그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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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관문화훈장’을 받는 유상옥 회장
‘옥관문화훈장’을 받는 유상옥 회장
인사를 드리고, 안내해 주는 분을 좇아 여성용품들을 전시하는 위층 전시실에 갔다가 지하로 내려간다. 전시회 이름은 <송파(松坡)의 수집이야기>. 호가 ‘송파’이신 모양이다. 백남준의 작품을 보고, 수많은 종들을 보고, 종을 흔들어 소리도 들어보고, 지하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서재를 찬찬히 돌아본다. 손길과 체취가 일일이 배어 있는 무수한 수집품들. 책상 앞에 한 번 앉아보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예의가 아니다. 그저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이 분의 삶을 일부이나마 가슴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감동은 여러 무늬로도 오고, 여러 소리로도 온다. 말씀이 그랬고, 모두 다른 종소리들이 그랬다.

글_ 최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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