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옷이고 책이고 모두 젖어버린다. 어디서 비료부대라도 만나면 땡이다. 일단 책보를 돌돌 감아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10리 길을 뛰다 걷다를 반복하여 집에 오면 먼저 책보를 풀고 젖은 책들을 꺼내 마루에다 펼쳐놓고 텅 빈 집 봉당에 앉았다.
베란다에 서서 빗소리를 듣고 있다. 주말 오후 갑자기 내리는 빗줄기가 제법 거세다. 유리창에 부딪히고, 더러는 은행나무 이파리에 내려앉은 빗방울은 이미 갈 길을 정한 듯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흘러간다. 빗물을 바라본다. 갈라지고 합치고 또 갈라지는 저 빗물은 얼마를 더 흘러야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눈을 돌려도 자꾸 따라오는 빗소리가 지난 시간 속으로 등을 민다.
책장을 넘긴다. 갈피마다 빗소리가 들어 있다. 지천명을 넘어온 빗소리가 기억의 저편에서 쏟아진다.
글·사진_ 문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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