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 | 엿장수 가위소리

솜씨 | 엿장수 가위소리

입력 2010-10-31 00:00
업데이트 2010-10-31 12:0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헐렁망탕에 파는 엿, 말만 잘해도 거저 주는 옛 인심

엿장수 가위 소리도 사라진 풍물의 하나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마을 안 골목길에서 사나흘이 멀다하고 들을 수 있었던 소리다. 그뿐 아니라 그때마다 마을 아이들은 모여들어 신바람이 났고, 더러는 입 안의 침을 몰아 꼴깍거리기도 했다.

엿장수의 엿가위는 특이했다. 가위의 날이 따로 없는 민드름하고 넓적한 잎에, 가위 다리 또한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손가락을 다 넣어도 헐렁하게 공간이 남는 큼직한 것이었다. 엿장수는 이러한 엿가위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고, 때로는 노래와 춤을 곁들이기도 했다. 엿모판을 짊어진 채 춤을 추기도 하고, 아예 엿모판을 내려놓고 노래와 춤판을 한바탕 벌이기도 했지만 노래와 춤에 엿가위를 놓는 일은 없었다.

이미지 확대
이구십팔 열일곱 살 먹은

처녀 젖통이같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엿

남원 광한루 대들보 같고

밀양 영남루 기둥 같고

진주 촉석루 한기둥 같구나

굵은 엿 헐한 엿

어디를 가며는 거저 주나

같은 값이면 이리 와

노래와 춤은 구성진 것이었지만 그 노래와 춤을 이끄는 듯한 가위 소리가 한결 더 멋있었다. 오른손에는 가위를 쥔 시늉을 하고 손목을 흔들어 대며 흉내를 내볼 만큼 그렇게 멋이 있었다.

찰가락 찰가락 탁

찰가락 찰가락 탁

이런 반주가 나오면 “울릉도라 호박엿 / 평창 대화 옥수수엿 / 바삭거린 창평엿”같은 노래가 나왔다.

짤칵짤칵 찰가락

짤칵짤칵 찰가락

위의 가위 소리면 “쫄깃쫄깃 찹쌀엿 / 하박하박 사탕엿 / 울퉁불퉁 대초엿 / 호콩호콩 호콩엿 / 달랑달랑 호두엿”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엿장수는 입심도 좋았다. 주워섬기는 엿단쇠 소리 속엔 간간 상스러운 말도 끼어 있었다.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마을 어귀로부터 울려오면 중뜸이나 윗뜸의 아이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아래뜸으로 내닫는다. 손에는 엿과 바꿀 수 있는 고물 폐품들이 들려 있었다. 엿장수의 뒤를 졸래졸래 따르며 흥겨워하다가 엿모판을 내려놓으면 손에 든 고물들을 내민다. 헌 옷가지, 목 떨어진 숟가락총, 구멍 난 고무신짝 등이었다.

엿모판은 울긋불긋 아름다웠다. 색색의 물을 들인 산자 부스러기 같은 것을 수놓듯 놓은 모판엿이 있는가 하면 밀가루를 묻힌 하얀 가락엿도 있었다.

이미지 확대
자 어서들 와여 어서 와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요내 엿판에 엿 떨어진다

섣달 큰 애기 개밥 퍼주듯

헐렁망탕에 파는 엿

말만 잘해도 거저 주지

엿장수의 입은 엿을 팔면서도 놀지 않는다. 가락엿을 달라면 긴 엿가래를 엿가위의 등으로 툭 쳐서 부러뜨려 주고, 모판엿을 가리키면 납작한 쇠끌 같은 것을 모판엿에 갖다 대고 엿가위 복판께로 토퍽토퍽 쳐서 떼내어 준다.

아무것도 엿과 바꿀 수 없는 아이는 엿모판의 엿이나 엿모판에서 떨어져 나가 다른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엿을 바라보며 부러운 눈짓을 보낸다. 이러한 아이들의 눈길에 엿장수의 눈길이 닿으면 엿장수는 또 노래를 부른다.

사탕보다 달고 단 엿

침이 질질 흐르는 엿

하며, 모판엿을 쥐꼬리만큼 떼내어 그 아이 입에 쏙 밀어 넣어 주기도 한다.

가락엿으로 엿치기를 하기도 했다. ‘하나 둘 셋’하며 엿을 부러뜨려서 입바람을 불면 부러진 엿의 단면에 구멍이 나게 마련인데, 큰 구멍이 있는 쪽이 이긴다. 이긴 쪽은 진 쪽의 엿을 받아먹는 내기였다.

모판엿은 쇠끌로 자룸하면서도 너덜너덜하게 떼낸 것이어서 어린이의 작은 입으로 베어먹기에 좋도록 되어 있었다. 강엿처럼 단단하지도 않고 눅직한 모판엿은 입에 넣어 우물거리기가 바쁘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맛 또한 조청보다 단 맛이었다.

이제는 엿장수도 그 엿장수의 가위소리도 가위춤에 곁들인 노랫소리도 흔하게 보고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옛날의 엿장수는 아무나 할 수 있었던 게 아닌 것 같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그 생김새부터가 희극적이어야 하지만, 입담과 노래, 춤 재주도 웬만큼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엿장수는 못할 성싶다.

오늘날처럼 구경거리가 많지 않았던 옛날의 시골, 마을 골목에 엿장수가 들어서면 아이들은 물론 아낙네들까지도 담 너머로 눈길을 보내는 한바탕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엔 뭔가 낭만적인 멋이 있었다.

글·사진_ 최승범 수필가
많이 본 뉴스
공무원 인기 시들해진 까닭은? 
한때 ‘신의 직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공무원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9급 공채 경쟁률은 21.8대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공무원 인기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낮은 임금
경직된 조직 문화
민원인 횡포
높은 업무 강도
미흡한 성과 보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