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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그의 꿈③ | 포항 호미수회(虎尾樹會) 서상은 회장

그의 삶 그의 꿈③ | 포항 호미수회(虎尾樹會) 서상은 회장

입력 2011-06-05 00:00
업데이트 2011-06-0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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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있으면 문화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해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곳. 그래서 한반도의 성스러운 기운이 집약되어 있는 포항 호미곶. 이곳에 ‘나무를 심어 숲을 키우고, 문화예술의 터전을 만들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문화운동가가 있다. 바로 그가 서상은(76) 호미수(虎尾樹) 회장. 호미수의 호는 호랑이 꼬리(虎尾)에 나무(樹)를 심자는 취지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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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꼬리에 털을 심자’ - 호미수회 창립

“예부터 호미곶을 한반도의 꼬리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백두대간을 받치고 있는 곳이기에 대한민국의 정기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이죠. 한때 일본인들에 의해 토끼 꼬리로 폄하되어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동쪽 육지의 끝을 지키는 의연한 호랑이 꼬리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호미곶을 토끼 꼬리라 이야기할 때 호랑이 꼬리라 부르자고 줄곧 주창한 이가 서 회장이다. 이를 시각적으로 뒷받침하고 홍보하기 위해 1988년 운사 성시열 화백에게 ‘한반도 호랑이 지도 그림’을 2점 의뢰, 국립등대박물관과 호미곶 면사무소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0년 1월 1일 기존의 포항시 ‘대보면’이 ‘호미곶면(虎尾串面)’으로 새출발하게 된다. 그의 끊임없는 ‘호미곶’ 애향심을 높이 기려 포항시는 그를 호미곶면 최초의 명예면장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구미시장, 영일군수 등 수많은 직책을 수행했지만 호미곶 끝마을 구만리에서 태어난 저로서는 말년의 고향 명예면장직이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직책입니다.”

호미곶 일원에 22년째 나무심기 운동 벌여

서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호미수회는 지난 1990년 창립 이후부터 22년째, 해마다 호미곶 일원에 해송을 심어 ‘생명의 숲’을 가꾸어 오고 있는 포항·경북지역의 대표적 사회문화단체. 국립등대박물관 일원에서부터 호미곶 끝마을 구만리 해변에 이르기까지 매년 2~4,000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있다.

“호랑이 꼬리에 정기를 불어넣자는 취지에서 호미수회 회원들과 함께 22년째 호랑이 꼬리에 털(나무)을 심는 ‘호미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호랑이 꼬리에 털을 심자’는 슬로건은 호미수회의 기본이념이자 서상은 회장의 일생의 꿈이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호미곶은 전국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바람이 센 지역이기 때문에 식물 생장이 어려운 땅이다. 그러한 악조건에도 불구, 그는 이제껏 5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왔다. 그런 노력에 의해 생존율 50%도 안 되는 황무지에서, 22년 전 심은 10㎝ 남짓의 해송이 3m 높이의 거목으로 자랐다. 그렇기에 그는 잘 자란 나무들을 어루만질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장성한 자식들 마냥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는 이 호미수 운동으로 《경향신문》 주최 ‘녹색대상’, 《매일신문》 주최 ‘늘 푸른 환경대상’, 포항환경운동연합 주최 ‘환경인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여생을 호미곶에서 호미수회를 만들어 호미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면으로는 ‘나무 심는 모임’을 만들어 ‘나무 심는 운동’을 하는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척박한 이곳을 ‘문화예술’이 꽃을 피우고 푸른 바다처럼 출렁이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큰 포부가 숨어 있다.

‘숲이 우거지면 새가 날아든다’고 했던가. 나무가 숲을 이루면, 그 숲에는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깃든다. ‘숲이 있으면 문화가 있다’는 평소 서 회장의 지론과 일맥상통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호미수회를 근간으로 이 호미곶에는, 다양한 문화예술사업들이 호미곶 해송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굵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17회째 접어드는 ‘호미예술제’와 포항이 낳은 한국 수필문학계의 거목 한흑구 선생을 기리는 ‘흑구문학상’ 제정·시행, 문화예술지 《호미예술》 발간 등이 그 대표적 결과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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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대표 문화예술 행사, 호미예술제·흑구문학상

포항지역 대표 문화행사인 ‘호미예술제’는 서회장이 추진위원장으로 매년 포항시 호미곶면 호미곶 새천년광장 일원에서 열리는 문화예술 축제.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자,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가 깃든 호미곶을 알리기 위해 포항시와 함께 호미수회가 주최하는 행사다.

호미예술제는 1983년 서회장이 영일군수 시절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를 발굴, 개최한 일월문화제를 계승 발전시킨 행사이다. 주요 행사로는 ‘연오랑 세오녀’를 기리는 추모제를 비롯해 포항지역의 강강술래인 ‘월월이청청’ 공연과 포항시립극단 연극공연, 전국 한글백일장과 함께 전국 미술사생실기대회, 여성 편지쓰기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또 예술제 기간 중 수필가 흑구(黑鷗) 한세광 선생을 기리는 ‘흑구문학상’ 시상식과 ‘한국수필문학 심포지엄’ 등도 아울러 열린다. 흑구 선생은 시·소설·수필·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문학가로,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와 생명과 인생에 대한 관조가 돋보이는 수필로 한국 수필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이다.

흑구 선생과 동향으로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서 회장이 중심이 되어 2009년 흑구 탄생 100주년에 맞춰 흑구문학상제정위원회를 설립하고 흑구문학상을 제정, 매년 시행해 오고 있는 것이다.

흑구문학상제정위원회는 올 하반기에 호미곶 끝마을 구만리의 공회당 자리에 흑구문학관을 개관할 예정이기도 하다. 흑구문학관 개관과 함께 ‘포항 호미곶을 한국 수필문학의 메카로, 나아가 대한민국 문학의 전당으로 조성하는 것’이 서 회장의 꿈이자 희망이라고 한다. 아울러 ‘문학공원 조성’도 함께 계획, ‘호미곶을 명실상부한 문화의 드넓은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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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문화예술이 모이는 숲’ 되기를 희망

구만리 끝자락의 서회장 자택을 찾았다. 대구에 거처가 있지만 고향의 푸른 바다와 소나무 숲이 바람에 일렁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어릴 적 고생하며 자랐던 고향이기에 더욱 정이 가고 애틋한 곳이란다.

자택 정원에는 이미 봄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붉은 동백꽃의 선연함과 홍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사람 마음을 온통 따사롭게 한다. 그의 고향집에서 그의 고향사랑의 따뜻함을 느끼는 기분이다.

그의 서재에는 연만한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서 회장의 활동편력들이 가득하다. 한 벽을 장식한 각종 상패며 액자 사진, 다양한 서적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현직시절 고위 행정공무원 출신이었다. 구미시장, 영일군수, 달성군수, 경상북도 내무국장 등 두루 요직을 거쳤다.

그는 부임해 간 곳마다 각종 문화단체와 문화예술 축제를 만들어 시·군민들의 화합에 노력했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지역 문화예술 행사만 하더라도 일월문화제, 선산풍년제, 달성충효제, 구미예술제 등,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때문에 임지마다 ‘문화시장, 문화군수’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행정가이면서도 예술적 정서가 강한 그의 성정 때문이기도 하겠다.

기실 서 회장은 1963년 한국문단의 거목 선우휘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한 수필가로, 문학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원로 문학인. 아우 서상만 시인과 함께 형제문인으로서 왕성한 문학활동으로 문단의 귀감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서 회장의 문화예술적 보폭은 넓고도 다채롭다. 그만큼 열정적이고 이루고자 하는 꿈이 크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호미수의 날입니다. 호미수의 날에는 호미곶에 나무를 심는 날이지요.” 올해 ‘호미수의 날’은 3월 18일. 정해진 날 없이 날씨와 상황에 따라 적합한 날에 나무를 심는다. ‘나무를 심는다’는 형식에만 지우치지 않겠다는 뜻이 읽힌다.

“이제 제가 할 일은 고향마을에 나무를 심는 사람으로 남는 일입니다. 100년이 지나서 이 나무가 거목이 되고 ‘문화예술이 모이는 숲’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숲이 있으면 문화가 깃드니까요.”

간편복에 모자를 쓰고 행사장인 호미곶 면사무소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여느 일꾼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모자에 ‘푸른 바다, 푸른 숲, 푸른 꿈, 호미수’란 마크가 햇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날 뿐이다.

글·사진_ 최원준 도서출판 말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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