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촌(村)스러운 이야기]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②

[촌(村)스러운 이야기]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②

입력 2011-06-19 00:00
업데이트 2011-06-19 11:27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감사합니다! 나를 받아준 히말라야

저 산 넘어 하늘과 맞닿은 곳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히말라야는 아침이면 가장 빨리 해님을 만나고, 저녁이면 가장 늦게까지 햇볕을 받아 빛나는 곳입니다. 아직 해발 800m정도인 이곳에서도 그런 히말라야의 신비한 산마루가 훤하게 보입니다. 자고로 안나푸르나 산군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
이제 네팔도 현대 문명의 속도를 맞추느라 오지에 찻길이 뚫리고, 전기가 들어오고, 웬만한 곳에서도 휴대전화가 터지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튼튼한 철다리로 바뀌었습니다. 지난날 나무와 밧줄로 엉성하게 만든 다리는 얼마나 심하게 흔들렸던지… 바닥의 나무 틈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시꺼먼 물살은 또 얼마나 무서웠던지… 수직의 벽과 고소에서의 등반을 하고 다녔으면서도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안전해 보이는 철다리를 건너며 안심이 됩니다. 그래도 조금 무섭기는 했습니다.

이미지 확대
길은 비교적 잘 닦여 있었지만 아직도 짐 나르는 당나귀라도 한 무리 지나가면 아예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먼지가 생깁니다. 거기다 찻길을 낸다고 공사를 해대 여기 저기 돌무더기 구르는 소리가 먼지만큼 거슬립니다. 또한 길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온갖 짐승들의 똥이 널려 있습니다. 이런 길을 돈 쓰고 고생하며 와야 하다니… 한국의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해발 2,500m가 넘어가면서 비교적 공기도 좋고, 민가도 점점 줄고, 마주치는 사람과 짐승도 줄어서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지며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확대
고도가 높아질수록 히말라야는 자주 보였지만 안나푸르나 뒤편이라 아직은 풍광이 그리 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강가푸르나(7,455m)가 나타났습니다. 강가푸르나는 내가 26년 전에 오른 산이어서 나에게는 특별한 산입니다.

오늘 오르는 곳은 강가푸르나의 북면이라 내가 전에 올랐던 남면과는 생김이 달라서 좀 낯설기는 했지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26년 전 나는 저 위에서 고소와, 자신과 싸웠습니다. 지금은 바람만이 오가는지 구름이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리움이 있는가?’ 생각보다 담담한 나 자신을 보며 그사이 내가 감정에 무딘 사람이 되었나 싶어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오르기 전 강가푸르나를 만나면 그때 생각이 떠올라 엄청 뭉클할 줄 알았는데….

이미지 확대
강가푸르나가 내려다보는 동네에서 하룻밤 자고, 강가푸르나가 계속 내려다보는 길을 한동안 걸었습니다. 고도는 높아지고, 키 큰 나무는 점점 사라지고 나무는 땅에 거의 붙어 있고, 눈이 있고, 야크가 사는 땅 4,000m 이상을 올라오면 호흡에 신경을 씁니다. 고소 증세가 올 수 있는 높이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완전히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신 탓에 속이 좋지 않아서 음식도 조심합니다. 현지 식의 기름기가 많은 반찬과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밥은 아무래도 쉽게 적응하기 쉽지 않아 잘 넘기지 못해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5,416m의 토롱라를 넘을 때까지는 몸에 탈이 나면 안 되겠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4,080m의 야크카르카라는 동네의 외딴 롯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 사람은 저를 보며 그 겨울 동안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갔을 때 비로소 난로에 연통을 달고 불을 피우며 반기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확대
트레킹 시작 이후 처음 만난 프랑스 사람 두 명은 눈이 많이 와서 토롱라를 넘을 수 없다고 저를 보며 도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는 올라가 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비교적 컨디션도 좋고, 고소도 없고, 잘 먹지는 못하지만 잘 자는 편이라 마음은 편했습니다.

산에 들어가면 안 그래도 말이 없는 나는 이번 산행 동안 거의 묵언 수준이 되었습니다. 아들 기범이와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도 아들은 저보고 “엄마는 자기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서 물어봐도 대답도 없다”고 많이 삐쳤었습니다. 이런 제가 하물며 외국에서, 그것도 말이 겨우 통하는 어린 현지인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보다는 내 세계가 더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지 확대
어쩌면 세상의 모든 생각조차 접었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그냥 그때가 있을 뿐입니다. 그 자체가 좋을 뿐입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고 몸이 가는대로 발을 옮기고, 그저 숨이 가파오니까 ‘힘들구나’라고 느끼고, 또 미끄러운 눈길은 ‘미끄럽구나’, 평지는 ‘편하구나’라고만 느낄 뿐입니다. 그러는 중에는 또 이렇게 혼자 걷고 있는 ‘나는 누구이지’를 끊임없이 생각해 보는 시간도, 나와 인연이 있었던 좋고 나빴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한 사람씩 불러와서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아직도 찌꺼기가 남아 있는 대상은 결론이 날 때까지 불러다가 왜 그런지를 분석했습니다. 비교적 잘 지낸 인연들이 많은 듯했고, 행여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대상들에게 깊이 사죄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참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4,080m 야크카르카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간밤에 심한 바람과 함께 눈이 내렸습니다. 허술한 숙소 문틈으로 눈이 들어와서 침낭 발치까지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지난 저녁에 걱정한 대로 또 눈이 내린 것입니다. 눈이 오면 산을 오를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출발을 미루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며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리하면서까지 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넘고 싶다고, 히말라야와 나와 지난날 하지 못한 화해가 있다고, 이제 화해하고 싶다고….

하이캠프까지만 올라가 보고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때 포기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덕분이라 믿고 싶습니다. 오전 10시 30분을 넘기며 눈이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었습니다. 아무도 밟은 적 없는 히말라야 눈길 위에 내 발자국을 첫 발자국으로 남기며 한 발 한 발 고도를 높입니다.

때로는 길이 얼어붙어 한참을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급경사의 고개에서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힘겨워서 고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만한 고생 없이 그 길을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해냈습니다. 눈과 바람만 존재하는 그곳, 토롱라!

감사합니다.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감사합니다’라는 한 문장만 내 마음속에 가득했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신에게, 나를 받아준 히말라야에게,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도와준 J. P 라이에게,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감사 여행입니다.

글·사진_ 남난희 《낮은 산이 낮다》 저자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