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말하다 | 불운한 유미주의자 김동인

편지로 말하다 | 불운한 유미주의자 김동인

입력 2011-07-03 00:00
업데이트 2011-07-0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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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마음산책) 중에서- 강인숙 저

소설가 김동인이 부인 김경애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남편을 옥중으로 보내고 애아(愛兒)*를 황천으로 보낸 당신의 설움 무엇으로 위로하리오.

참고 견딜밖에.

이 편지를 받고 곧, 면회를 와 주시오.

전번은 당신이 너무 울기 때문에 긴한 부탁 하나도 못하였소.

원칙으로는 면회가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긴한 사정이 있으면 또 할 수 있소.

이곳으로 하는 당신의 편지가 검열하기에 너무 길다고 주의시키니 이 뒤는 좀 더 짧게 쓰시오.

아무쪼록 스스로 위로받기에 노력하시오.

내 몸은 건강, 단 체중은 16관 800이던 것이 지금 꼭 16관**으로 내렸소.

남편 씀

* 사랑하는 어린 자식

** 1관은 약 3.75킬로그램, 16관이면 약 60킬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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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김동인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어느 날 사석에서 시국에 대해 불평한 것이 그 자리에 있던 일본 순사의 귀에 들어가 ‘천황모독죄’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수감된 것이다.

선생은 그 무렵 건강이 아주 좋지 않았다. 파산과 이혼이 겹쳐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생긴 불면증이 고질이 되었다.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으니 약의 분량을 점점 더 늘린 것이 화근이었다. 고강도의 수면제 속에 들어 있던 모르핀이 10여 년 동안 누적되어 모르핀 중독 증세가 생긴 것이다.

재혼했으니 두 여인이 낳은 아이 수가 만만치 않았다. 부양가족은 많은데 유산은 모두 탕진해버려, 김동인에게는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다 버렸다. 이광수의 작품까지 대중문학으로 치부하여 《창조》에 글을 쓰지 못하게 할 정도로 순수문학에 집착했던 그 오만한 성주는, 자존심을 모두 내던지고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무렵에는 야담(野談)을 쓰는 작가로까지 전락했다.

그의 친일은 건강과 관련이 많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지황군(北支皇軍)위문작가단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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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점점 목을 조여오자, 이 허약한 신사는 징용에 끌려갈까 봐 전전긍긍했다. 건강이 말이 아니니 끌려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문인위문단을 만들어 중국의 북지[北支; 중국의 북부지방-일본인의 중국을 ‘지나(支那)’라고 불렀기 때문에 북부 지나를 줄여 북지]로 일본 군인들을 위문하러 나선다. 전선에 있는 일본 군대를 위문하러 가면 좀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 것이다. 그런데 동인 선생은 그 여행 도중에 착란을 일으켜 혼수상태가 되는 바람에 북지에 다녀왔다는 방문 보고서를 쓰지 못했다. 그 후 김동인 선생은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북지에 있는 군인들을 위문하러 가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몸부림치지만 그나마도 병으로 인해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 있어 친일 행각은 징용 회피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북지까지 찾아갔는데 그나마도 감내할 체력이 없어 좌절하고 마는 비참한 환자의 몸부림이 친일 행위의 수위를 높여간다. 그는 군국주의를 좋아할 수 없는 철저한 유미주의자다.

이 편지는 ‘천황모독죄’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아내에게 보낸 것이다. 동인 자신도 건강이 말이 아니었던 때지만 집에서는 더 참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 중 하나가 감기를 앓다가 죽은 것이다. 아이까지 세상을 떠나 집안 형편은 엉망일 때인데…. 그 경황에도 울고 있는 아내에게 면회를 와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편지가 길어 야단맞았다는 사연까지 적어 보내야 하는 이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착잡했을까?

나는 이따금 내가 일제강점기에 어른이 아니었던 것을 신께 감사한다.

TIP

김동인

소설가 김동인(1900~1951)은 전주에서 태어났다. 호는 금동.

1919년 최초의 순수문학 동인지 《창조》를 발간하고,

첫 작품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했다.

〈배따라기>〈감자〉<광염 소나타〉 등의 단편 소설을 통해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기여했다.

저서로는 《운현궁의 봄》《서라벌》《발가락이 닮았다》 등이 있다.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마음산책)의 저자 강인숙 관장은 영인문학관을 운영하며 문인과 예인의 육필원고와 편지 등을 2만 5천여 점 이상 모았다. 그중 이 책에는 노천명 시인에서 백남준 아티스트까지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을 모았다. 《삶과꿈》에서는 강인숙 원장의 도움으로 한 사람만을 위한 작품, 낡은 서랍 속 뜨거운 마음을 6회에 걸쳐 훔쳐본다.

글_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사진_ 영인문학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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