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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2 |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연평도)] 하늘, 바다, 사람…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

[눈에 띄는 공연-2 |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연평도)] 하늘, 바다, 사람…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

입력 2011-11-13 00:00
업데이트 2011-11-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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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동행 취재기

지난 9월 17일(토), 저녁 6시 30분. 연평도 조기역사박물관 앞 야외무대에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등장했다. 소개하는 사회자도 없고 특별한 무대장치도 없다. 무대 위엔 슈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와 연주자 백건우 씨 혼자만 앉아 있다. 오늘의 관객은 연평도 주민들과 연평바다를 지키는 해병대 병사들 그리고 전국각지에서 찾아온 그의 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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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구름 낀 하늘과 쌀쌀한 바닷바람 그리고 솟대장식을 배경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쇼팽의 <뱃노래>를 첫 곡으로 하여 리스트의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랑수아>, 드뷔시의 <기쁨의 섬>,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 연평바다에 울려 퍼졌다.

백건우 씨의 손은 마치 연평주민의 마음을 달래는 듯 피아노 건반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보듬었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쿵쾅거리다가 또 나직이 속삭이듯 내려앉는 그의 피아노 선율에 하늘의 갈매기와 바다의 물고기들도 함께 듣는 듯했다. 연주가 깊어지면서 하늘의 구름도 개고 있었다.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했다. 평상시 앙코르 연주를 안 하기로 알려져 있기에 과연 앙코르곡을 해줄지 몰랐지만 사람들은 백건우의 연주를 더 듣고 싶어 했다. 무대 옆 대기실에 들어갔던 백건우 씨는 리스트의 <잊혀진 왈츠>로 환호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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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취재 결정에 따라 새벽밥을 먹고 인천 연안부두로 향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MBC제작팀의 강 부장을 찾으라는 발행인의 말만 믿고 연평도로 가는 것이다.

아침 8시 인천 연안부두. 다행히 표가 있었다. 연평도 가는 배는 하루에 한 번밖에 없다. 그런데 풍랑이 거세면 출항이 취소된단다. 다음날 못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의 여행은 ‘모험’이 될 것 같았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모든 걸 하늘에 맡기기로 하고 배에 올랐다.

연평도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경, 조기 철에는 고기잡이배가 하도 많아 정박한 배를 타고 넘어 건너편 섬에 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설이 되어 버렸다.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마을 곳곳에 상흔이 남아 있다. 해양경찰서 건물도 시커멓게 그을려 있고 그 옆에 건물은 완전히 부서져 있다.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다지만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선착장에서부터 마을 진입로 곳곳에 백건우 콘서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백건우 씨의 콘서트가 연평도, 위도, 욕지도에서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뭔가 와 닿는 느낌이 있었다. 연평도는 북한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섬으로 얼마 전 포격사건이 있었다. 위도는 1993년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여객선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2003년 방폐장 유치문제로 갈등을 겪은 섬이다. 욕지도는 부인 윤정희 씨가 영화 <화려한 외출>을 촬영한 곳이다. 이번 콘서트는 부인과의 추억여행을 문화적으로 소외된 섬마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백건우 씨는 콘서트가 있기 여러 달 전부터 커다란 한국지도를 연습실 벽에 붙여놓고 틈만 나면 지도를 들여다봤다고 한다. 세 섬을 최종 선택한 이도 백건우 씨.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봤던 바다와 바닷가 사람들을 잊지 못해서 섬마을 콘서트는 이루어진 것이다.

연주회장인 조기역사관을 찾은 시각은 오후 1시, 연평도 서북해안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조기역사관은 전망이 아주 좋았다. 입구에는 청사초롱이 걸려 있고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먼저 강 부장을 찾았다. 생각보다 훨씬 우아한 모습의 여성이다. 소개를 하고 편의를 봐줄 것을 부탁했더니 친절하게 맞아준다. 마침 백건우 씨의 오전 연습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해야 하니 같이 가자고 한다. 백건우·윤정희 씨, 강 부장, 나 이렇게 넷이 식사를 하기 위해 내려갔다.

그런데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부인 윤정희 씨가 어제 먹은 간장게장이 탈이 낫는지 배가 아프다고 한다. 여기는 병원도 없다. 마침 내가 수지침을 배운 적이 있어서 수지침의 경혈자리를 중심으로 손을 마사지하자, 핏기 없던 손에 화색이 돌아온다. 그 사이에 강 부장은 보건소에 가서 약을 지어왔다.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백건우 씨도 안도의 숨을 쉰다. 그 와중에도 윤정희 씨가 한마디 한다. “식당에 가서 얘기하지 마세요.” 식당 주인이 미안해 할까봐 염려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백건우 씨가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한다. 바닷가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가 멋있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여러 장을 찍는다. 또 뻘에 세워둔 막대기를 보고 뭐냐고 주민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조수간만을 이용한 고기잡이 그물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궁금하면 못 참는 듯 신기한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를 않는다. 바닷가에는 죽은 꽃게가 있었는데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5시 30분, 이제 연주회장으로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 윤정희 씨는 많이 회복된 것 같았다. 그녀는 남편의 연주회에 늘 동행한다고 했다. 영화 <시>를 찍을 때도 계약서에 남편의 연주회가 있으면 촬영 스케줄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조항을 넣을 정도. 연주회 시간이 다가오자 조기역사관은 사람들로 차기 시작했다. 앞마당에 놓인 400여 석의 의자가 꽉 차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담요 500장도 동이 났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주변 높은 곳에 올라가 백건우 씨를 기다렸다.

연주회를 기다리는 동안 이 연주회는 그야말로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식 연주회장도 아니고 클래식을 아는 청중도 아니다. 모든 게 변수일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올지, 바람이 거세게 불지, 북한의 포격이 또 있을지, 청중이 얼마나 올지, 피아노 소리가 제대로 들릴지, 무엇보다 청중들이 감동할지, 모든 것이 확실치 않은 가운데서 백건우 씨는 섬마을 콘서트를 열기로 한 것이다. 내세운 조건은 단 하나, “연주회가 끝나고 나면 마을주민들과 막걸리 파티를 하고 싶습니다.”

무대에 백건우 씨가 나타나자 청중들은 무대를 주목했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는 불과 1m, 바로 앞에서 세계적인 피아노의 거장 백건우 씨가 연평주민을 위해 연주를 하는 것이다.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팔순을 넘긴 노인까지 음악 앞에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피아노 선율은 하늘과 바다와 사람을 휘저어놓았다. 그의 섬세한 피아노 손놀림은 빠르게 느리게 부드럽게 거칠게 건반을 쓰다듬었다. 그의 발도 음악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음악이 흘러들어가자 연평도는 평화가 되었다.

앙코르곡인 <잊혀진 왈츠>가 끝나고 백건우 씨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사람들은 설레는 가슴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연평중학교의 한 여학생이 자기가 직접 만든 꽃다발이라며 종이로 만든 장미꽃다발을 선물했다.

연주회가 끝나고 연평부녀회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주민들과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상에는 조기매운탕, 꽃게튀김, 바지락전에 막걸리가 놓였다. 국회의원, 군장성, 군수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백건우·윤정희 씨 부부는 연평도 주민들과 얘기하고 싶어 했다. 그들의 사인 요청과 사진촬영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말했다. “처음 하는 섬마을 콘서트라서 걱정했는데 사람들의 표정에서 감동을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모험이었습니다.”

다음날 풍랑이 거세 여객선이 뜨지 못했다. 해경에선 백건우 씨를 위해 순시선을 보내주었다. 윤정희 씨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여학생에게서 받은 종이꽃다발을 꼭 품고 있었다.

글_ 김창일 기획위원·사진제공_ 문화방송(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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