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8월호]이혼·사업 실패 이후 찜질방 생활, 배우 임영규

[퀸8월호]이혼·사업 실패 이후 찜질방 생활, 배우 임영규

입력 2010-08-03 00:00
업데이트 2010-08-03 15:3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1980년대 인기 탤런트로 활동하던 배우 임영규. 1993년 이혼 이후 연예계를 떠났던 그는 그동안 폭행을 비롯한 여러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고통의 시간 속에서 보낸 지난 17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1993년 돌연 이혼을 하게 되면서 그는 자취를 감췄다. 항간에는 외국에 있다, 사업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폭행사건이 대다수였다. 이혼과 사업 실패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알코올성 치매를 겪으며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17년 전 헤어진 두 딸을 만나겠다는 생각만으로 다시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임영규가 지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미지 확대


☞퀸 본문기사 보러가기

 - 딸들이 두 살, 네 살일 때 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이혼 당시에 양육권은 제가 갖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딸들을 키운 것은 아이들 엄마였어요. 그래서 전 집을 나올 때도 옷가지만 몇 벌 챙겨서 나왔죠. 그때 저희 어머니가 “너는 이혼을 해도 본가에서 먹고살 수 있지만, 전처는 홀몸으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을 테니 위자료로 갖고 있던 재산을 다 줘라”고 하셨어요. 저도 그게 옳다고 생각해 1원도 들고 나오지 않았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아이들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미국에서 돌아온 뒤에는 계속 사업이 실패하면서 양육권마저도 아이들 엄마에게로 넘어갔죠. 사실 그동안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것도 방송생활을 못한다거나 사업에 실패한 것보다 과거 내 잘못으로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식당이나 공원에서 아빠와 딸이 함께 있는 모습만 봐도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마음만 들었죠.

이미지 확대


 - 한국에서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나요?

 미국에서 돌아와서는 형제들에게 신세를 졌어요. 주로 사업자금 명목으로 형제들에게 돈을 빌렸어요. 그때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한국에서의 사업이 내리막길을 달릴 때쯤 직원들 월급은 챙겨줘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끌어다 썼어요. 결국 다 갚지 못하자 빚쟁이들이 어머니의 장례식장 앞까지 찾아왔죠. 내가 그곳에 나타나면 난장판이 되고 형제들에게도 피해만 줄 것 같아 결국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어요. 한국에서 했던 사업도 망하고 전세에서 월세로, 월세 보증금마저 다 써버린 뒤에는 고시원, 이후에는 그 돈마저 없어 찜질방까지 가고 공원에서 노숙도 했어요. 거주지가 계속 불분명하다 보니 주민등록도 두세 번 말소됐죠. 수면제 대신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 알코올성 치매로 이어지게 됐죠. 지금은 두 달 넘게 전혀 술을 입에 안 대고 있지만, 당시엔 술을 먹고 나면 기억을 못할뿐더러 성격도 포악해졌어요.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폭행사건도 술을 먹고 난 뒤 벌어진 일이었어요. 실제로는 멱살을 잡거나 따귀를 때린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제가 공인이고 전파를 타다 보니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이미지도 안 좋아졌죠. 몇 번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제가 죽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고통과 피해를 생각하니 차마 죽을 수도 없었죠. 차라리 죽을 용기로 참고 견디자는 생각에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 현재 식당에서 주차관리 일을 하면서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주위에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제가 먼저 아는 동생을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제가 못할 것이라 만류했지만 “나는 이제 탤런트도 아무것도 아니니 잘할 수 있다”고 말하며 보조라도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일당 3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죠. 찜질방비 7천원, 밥 세 끼 2만2천원, 내가 좋아하는 담배 한 갑 사고, 교통카드까지 충전하면 딱 하루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더라고요. 술 취한 손님들이 제 얼굴을 알아보고서 괜한 시비를 걸 때면 정말 참기가 힘들죠.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요. 결국 이런 것이 다 인생 공부 아니겠어요?

 임영규는 취미 삼아 일주일에 한 번씩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르다 보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 과거에서 벗어나 변화된 모습으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요즘 그가 매일 하는 다짐이다. 지난날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과 절망의 시간은 이제 인생의 자양분이 되어 그에게 다른 이들과 더불어 도우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야 숨을 쉬며 사는 것 같다는 그. 욕심 없이 한 계단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는 삶 속에서 인생의 참기쁨과 희망을 누리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Queen 취재팀 김선영 기자 (sykim@queen.co.kr)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