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씨앗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올해는 내가 아프리카에 가서 침팬지를 연구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침팬지의 행동과 습성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침팬지와 우리를 가르는 뚜렷한 구분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홀로 동물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일부라는 것도요. 이제 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침팬지를 떠나 온 세상을 돌아다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말하겠습니다.내가 1년 중 300일을 길에서 보내는 이유
그 회의장에 갈 때만 해도 나는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의장을 나올 땐 침팬지들과 사라져가는 숲을 지키는 환경운동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침팬지와 인간이 아주 비슷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영리한 침팬지라 해도 여기 있는 여러분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지구에 살았던 수많은 동물 중에 가장 지적인 동물이 인간이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인간이 어째서 지구를 이렇게 망가뜨리고 있는 걸까요? 옛 조상들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 결정이 먼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칠지 늘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내 결정이 지금 당장 어떤 영향을 끼칠지만 생각합니다. 좋은 머리와 열정이 가득한 가슴 사이에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다시 이어야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다가와서 “다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항의를 해야 하는데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신문과 TV 뉴스에 나오는 절망적인 이야기들을 보며 사람들은 희망을 잃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다니며 그렇게 비극적인 이야기만 들은 것은 아닙니다. 멸종 직전의 동물을 구해내고, 댐 건축을 막고, 망가진 습지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쓴 책이 <희망의 자연>입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썼지만 이 책은 내게 가장 뜻 깊은 책입니다. 놀랍고 감동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이 일하는 뜨거운 현장에 가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뉴질랜드의 검은울새입니다. 알을 낳을 수 있는 암컷이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고 상대 수컷이 불임이었는데도, 생물학자 돈 머튼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지금은 400마리까지 늘어났지요.
여전히 침팬지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탄자니아 곰비국립공원의 이야기도 들려드리겠습니다. 1990년대 초반 그 주변을 경비행기를 타고 돌아보았더니, 국립공원만 남겨놓고 나머지 숲은 다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베어냈고, 나무가 사라지니 산사태가 일어나 점점 더 황폐해졌지요. 공원 바깥 상황이 이런데 아무리 유명한 침팬지인들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주변 지역민들을 돕는 TACARE(돌봄)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기술을 개발했고, 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로금융을 도입해 여성들의 자립을 도왔습니다. 그 지역을 그렇게 만든 진짜 원인인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계획도 시작했습니다.
땅의 회복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5년 만에 나무들이 5~6미터나 자랐습니다. 드디어 생태 통로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간 곰비국립공원에 있는 침팬지들이 다른 지역의 침팬지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뿌리와 새싹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 다른 생물학자들이 한 일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우리 다음 세대가 더 훌륭하게 지구를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1991년 탄자니아에서 12명의 중학생이 시작한 것이, 지금은 121개국 1만 6천 개의 그룹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가 1년에 300일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에너지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제는 광릉 수목원에서 한국 ‘뿌리와 새싹’ 회원들을 만났지요.
뿌리와 새싹의 정신은 이렇습니다. ‘매일, 매순간, 우리 모두가 이 지구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시작은 아주 간단합니다. 열정적인 친구 몇 명과 함께 제가 무엇인지, 그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것부터 해결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어떤 그룹은 버려진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쓰레기를 치우거나 강을 되살리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사는 곳, 경제적인 형편, 나이에 따라 하는 일은 다 다릅니다.
왜 뿌리와 새싹이라고 부를까요? 큰 나무를 한번 상상해보세요. 그 거대한 나무의 시작은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한번 만져보세요. 얼마나 연약한지.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물을 찾아 내려갈 때 거대한 돌들을 밀쳐냅니다. 새순 역시 태양을 향해 올라갈 때 큰 담벼락도 무너뜨리면서 올라갑니다. 상상해보세요. 그 돌과 담벼락들이 우리가 지구에 저지른 죄들이라고 말입니다. 뿌리와 새싹은 바로 희망의 운동입니다. 우리가 환경에 저지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희망의 운동입니다.
어머니 자연은 대단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잘못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힘을 합쳐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가 한국을 방문해 9월 30일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진행한 ‘희망의 자연’ 특강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 이미현 기자 | 사진 제공 사이언스북스, 에코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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