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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여, 사라지지 말고, 살아져라!

골목이여, 사라지지 말고, 살아져라!

입력 2012-02-12 00:00
업데이트 2012-02-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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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골목 여행 ,인천 동구 화평동-금곡동-창영동 골목길

골목엔 사람이 있다. 한껏 멋을 부린 소녀의 재잘거림이, 장난감 총 겨누며 사방팔방 뛰노는 아이들이, 낮술 한잔에 거나해진 아저씨가, 손으로 세차게 코 푸는 할머니와, 까칠한 슈퍼 아주머니가 산다. 살아 있는 우리의 삶이 곧이곧대로 튀어나오는 그곳, 골목. 그리하여 골목으로의 여행은, 일상을 떠나는 동시에 다시 닿는 일이며 삶을 밀어내는 동시에 밀착시키는 과정이다. 사람이 있어 골목이 좋다. 인천 동구의 골목으로 떠났다.

<화평동 냉면 골목> 원조가 아니면 또 어떠리

여름냉면이 별미(別味)라지만, 겨울냉면은 진미(珍味)다. 시린 날씨에 그 찬 것을 온몸으로 밀어 넣으면 가슴이 이내 홀가분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 깡통이 된 것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인천 동구 화평동(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 3번 출구) ‘냉면 골목’으로 그 맛을 찾으러 갔다.

화평동에 ‘세숫대야 냉면’을 파는 가게가 들어선 건 1980년대 초부터다.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낡고 허름한 노점으로 냉면을 먹으러 오던 것이 시작이었다. 사는 게 팍팍하고 고달프던 시절, 적은 돈으로 주린 배를 채워준 ‘싸고 양 많은’ 이곳 냉면은 마음까지 불리는 음식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늘어난 냉면집은 자연스럽게 상권을 형성했다. 세월과 함께 자취를 감춘 곳도 여럿이지만, 이 골목에 남은 10여 군데의 냉면집에서는 여전히 천 원짜리 네 장이면 곱빼기, 곱곱빼기 세숫대야 냉면을 대령한다.

먹거리가 유명한 곳이라면 빠지지 않는 ‘원조 경쟁’은 여기서도 치열하다. 간판 크기로 승부를 거는가 하면, 사장님 사진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간판 대신 ‘여기가 원조가 아니면 다른 가게에서 항의할 것이다’라고 선포한 곳도 있다(여기가 진짜 원조인 건 맞다-아저씨 냉면). 모두가 ‘원조’를 외치는 이 골목에서 ‘혼자 하고 있어요. 가게 앞에 주차하시고 들어오세요’라는 글씨를 삐뚤빼뚤 써 붙인 ‘엄마 손맛’ 냉면집은, 욕심이 없는 건지 자신이 있는 건지. 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 30년, 평균 20년, 얼마 안 된 곳도 7~8년 차임을 감안할 때, 이제 개업 1년을 맞은 ‘엄마 손맛’의 역사는 짧아도 너무 짧다. 내부는 또 얼마나 좁은지(식탁 네 개가 전부), 여러 모로 다른 가게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하는 찰나 주인아주머니가 일격을 가한다. “다른 집은 다시마로 육수를 내는데, 저는 열무김치 국물을 써요. 손님 많은 곳에선 엄두도 못 낼 일이죠.” 그렇다, 옛집은 그 나름대로, 새내기는 저 나름으로 각자의 맛을 내고 있었다. 굳이 원조가 아닐지라도 해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곡동 배다리 헌책방 골목> 책 냄새가 좋아, 책 소리가 좋아

“책을 읽는 일은 우리에게 있는 능동적 생명의 흐름을 읽어내어, 정신의 참 자유를 찾아가는 행위이다.” 돈 안 되는 낡은 헌책방을 왜 계속 하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먼저 답이라도 하듯, 배다리 골목의 헌책방 ‘아벨서점’의 주인은 가게 모퉁이에 故 박경리 선생의 목소리를 적어놓았다. 동의하지만 궁금하다. 왜 새 책이 아닌 헌책이어야 할까?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찾은 날, 문을 연 책방은 총 일곱 곳이었다. ‘임대 문의’가 붙은 곳만 네다섯 곳 정도. 사라졌거나 사라질 예정이거나,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곳이 골목이라고 하나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정도가 더하다. ‘배다리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민간 차원의 움직임이 활발하나, 몇 년째 산업도로 건설지역으로 거론되는 배다리 골목은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다. 이곳의 가장 오래된 헌책방 ‘집현전’에도 사람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책방 안 사정은 달랐다. 문을 열자 난로 냄새와 혼재된 낡은 책 냄새가, 사각사각 경쾌하게 춤추는 책 소리가 먼저 다가왔다. 아늑했다. 주인이 정한 기준으로 분류된 수많은 책 가운데 ‘내 책’을 고르는 일은 더 이상 찾는 게 아니다. 그것은 책을 운명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얼마나 수많은 사연이 이 책에 담겨 있을지, 얼마나 수많은 꿈들이 손때로 배어 있을지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새 책이 갖지 못한 이야기, 손때, 꿈이 헌책에 깃들어 있다.

<창영동 우각로 벽화 골목> 꼭꼭 숨었니? 찾는다!

여기겠지, 없다. 여긴 아니겠지, 있다. 잘 보이지도 않고 많지도 않다. 그래서 이제 안 해, 돌아서면 바로 거기 떡하니 벽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창영동 우각로 벽화 골목에서 벌이는, 말 그대로 벽화와의 한판 숨바꼭질이다.

우각로 일대에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한 건 2007년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단이 꾸려지면서 자연, 공간,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는 벽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담장에 흰 토끼가 그려지고, 주차장 담벼락엔 텃밭이 채색됐다. 늙고 낡은 담벼락이 옷을 갈아입자 마을엔 생기가 돌고, 소외되고 허름한 이 지역에 사람이 모였다. 벽화의 힘이다.

사실 생소한 골목에서 벽화를 찾아다니는 건 겁나는 일이기도 하다. 겨우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골목에서는 시야 확보가 어렵다. 누가 튀어나올지, 무엇이 기다릴지 전혀 모른다. 긴장한 탓에 모든 감각은 곤두선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완전히 믿는다. 그렇게 걸은 길을 온전히 내 것이다.

벽화에 심은 배추가 한겨울에도 싱싱하다. 벽화에 앉은 참새는 종일 지저귄다. 골목을 나오며 벽화에 쓰인 문장 하나를 곱씹는다. 낡은 골목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함께 산다는 건 옛날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함께 나누어가는 거란다. 그래서 난 이 마을이 좋고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글·사진 송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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