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방인이 살아가는 법

어느 이방인이 살아가는 법

입력 2012-02-26 00:00
업데이트 2012-02-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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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람 김충선(1571~1642)은 본디 ‘사야가(沙也可)’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 무사였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에 선봉군의 한 명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조총을 들고 조선 땅을 유린하던 사야가는 전쟁터에서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아내와 아이를 거느린 농부 한 명이 늙은 어머니를 업고 가파른 산길을 따라 피난을 가고 있었다. 총알이 쏟아지고 일본군이 뒤를 쫓는데도 농부는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사야가는 저토록 착한 백성을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자신을 따르던 군사들과 함께 투항한 사야가는 조총과 화약 만드는 법을 조선군에게 가르쳐 큰 공을 세웠고, 김충선이라는 조선 이름과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의 자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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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때 왜군이었던 김충선을 조선 사람들이 곱게만 볼 리가 없었다. 한갓 오랑캐 땅에서 건너온 이방인, 우리 땅을 침략한 원수. 사람들은 그렇게 김충선을 손가락질하며 사소한 잘못에도 거센 비난을 퍼부었을 것이다. 김충선은 평생 단 한 번도 사람들 앞에서 고향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대구 달성에 정착한 김충선은 두 명의 아내와 열 명의 자식을 두었다. 조선 시대의 다문화 가정이었던 셈이다. 당시에는 귀화인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김충선 일가는 소수자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을 것이다. 왜놈의 자식이라는 굴레를 쓰고 따돌림당했을 자식들을 앞에 두고 김충선은 이렇게 가르쳤다.

“남의 허물을 보려 하지 말고 좋은 점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칭찬해주어라. 거센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볕이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법이다. 너희를 해치려 하는 이들에게 앙심을 품지 말고 웃어주어라. 그들의 말이 맞다면 너희 행실을 고치면 될 것이고, 그들이 잘못했다면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 욕설을 퍼붓는 이들이 있어도 말없이 참고 자신을 다스리거라. 순간의 분노는 더 큰 화를 부르는 법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잠잠해질 것이다. 명심하거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는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았던 어느 다문화 가족의 치열한 생존 지침이다. 그러나 남을 이기기 위해 언제나 발톱을 세워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의 현대인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박수밀_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교수입니다.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박수밀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사성어 이야기> <기적의 한자학습> 등의 책을 썼으며, 연암 박지원의 주옥같은 산문들을 모아 번역하고 해제를 달아 <연암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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