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단절된 자연의 보고 vs 전쟁을 전제로 한 진공상태
헨리크 구레츠키,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이 깔린다. 종교적이면서도 역사적인 현대작곡가들이다. 띄엄띄엄 한 음표씩 천천히 밟아나가는 이들의 음악은 깊은 성당에서 울리는 장엄함과 ‘역사에 생략은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할 법하다.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비무장지대(DMZ)를 형상화하는 몸짓을 뒷받침해주기에는 딱이다.![‘수상한 파라다이스’의 무용수들은 백병전을 치르듯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나뒹군다. DMZ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7/28/SSI_20110728171612.jpg)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수상한 파라다이스’의 무용수들은 백병전을 치르듯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나뒹군다. DMZ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7/28/SSI_20110728171612.jpg)
‘수상한 파라다이스’의 무용수들은 백병전을 치르듯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나뒹군다. DMZ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도입부와 마지막은 영화 ‘아비정전’으로 유명해진 맘보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흥겹게 춤추는 장면으로 여닫힌다. 그 사이 작품은 크게 7개 부분으로 구성됐다. 진혼, 업보, 순응, 불편한 조화, 전쟁, 연민, 기록의 순서다. 모두 DMZ에서 보고 느낀 것에서 뽑아올린 키워드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있다기보다 DMZ에 대한 이런저런 느낌이 모자이크처럼 교차한다. 때문에 무용수들은 구름, 사슴, 토끼 같은 자연으로 변했다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백병전 장면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뒹굴기도 한다.
첫 창작 공연이니만큼 조금 밝고 경쾌한 작품이었으면 어땠을까. 홍승엽(49) 예술감독은 “첫 작품이라 뭔가 대단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면서 “다만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다가 DMZ를 떠올렸고, 싸움을 전제로 한 진공상태라는 모순적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무용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의외로 작품은 이해하기 쉽다. 한눈에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임을, 뭔가에 맹목적으로 몰두해 있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대목에서 홍 감독은 울컥했다. “한국의 현대무용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어요. 접해보지 않은 이들만 막연하게 서양 현대무용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나라 사대주의의 실체입니다.” 한 박자 쉬고 덧붙인다. “제가 발언이 좀 세지요? 하하하.”
오디션으로 선발된 17명의 무용수가 75분간 공연한다. 1만~1만 6000원. (02)3472-14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7-29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