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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은 러시아-한국 두 조국에 자긍심 지닌 특별한 민족”

“사할린 한인은 러시아-한국 두 조국에 자긍심 지닌 특별한 민족”

입력 2015-09-22 09:16
업데이트 2015-09-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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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째 사할린 한인사 연구해온 아나톨리 쿠진 러시아철도대학 역사학과 교수

러시아 쿠진 교수
러시아 쿠진 교수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아무도 연구하지 않을 때 혼자 시작했는데 이제는 후배가 많이 생겨서 든든합니다. 앞으로의 소망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했던 1세대 한인의 개인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인천광역시 시립박물관 분관인 한국이민사박물관의 초청으로 입국한 아나톨리 쿠진(75) 러시아철도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21일 ‘사할린 한인들의 망향가’란 제목의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한 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할린 한인은 러시아와 한국이라는 두 개의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지닌 특별한 민족”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사할린 한인 역사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쿠진 교수가 쓴 ‘사할린 한인사’를 많이 참고했다. 이 책은 그가 러시아에서 3권으로 발행한 ‘사할린 한인의 역사적 운명’을 1권으로 압축해 올 초 한국어판으로 발행한 것이다.

”최근 러시아 내 역사 관련 학술회의에 가면 사할린 한인에 관한 발표가 매번 있을 정도로 한인 역사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됐을 뿐 아니라 해방 후 나 몰라라 라던 조국을 잊지 않고 살면서 정착한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러시아와 한국·일본 등 동북아 관계 연구에 중요한 사례로 꼽힙니다. 제 역할은 고문서와 기밀문서 등을 파헤쳐 잊힌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었지요.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할린 연구자가 늘어나고 있고 오늘처럼 전시회도 열리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1939년 사할린에서 출생한 그는 구소련 시절 사할린주위원회 서기 비서관, 유즈노사할린스크시위원회 제2서기 등 공산당 고위 공직자를 거쳐 사할린주 국립문서보관서 학술연구원장을 지냈다.

2001년 논문 ‘러시아 극동 지역의 한인 이주’로 러시아에서 사할린 연구 박사 1호로 기록된 쿠진 교수는 공직 생활 시절부터 한인들과 깊은 연관을 맺어왔다.

공산당 서기 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우연히 한인들이 차별받는 것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할린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40㎞ 떨어진 항구도시인 코르사코프로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중간에 국경수비대 검문소에서 군인들이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한인들을 모두 내리게 하더니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무국적자라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들은 코르사코프에 가면 혹시 일본행 배 등을 타고 한국으로 갈 수 있을까 싶어 무작정 나섰다고 하더군요.”

사할린 내 소수민족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그가 알아보니 정부는 한인들에게 원하면 국적을 부여해주고 있었는데 이들이 거부해서 무국적자로 남은 것이었다. 혹시 소련 국적을 취득하면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걱정해서라는 거였다.

그는 “거주 이전과 직업 선택 등에 제한을 받고 3개월마다 거주지 신고를 해야 하는 등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채 고국에 돌아가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의 간절함에 가슴이 찡해졌다”며 “마침 한인의 교육, 취업 등을 담당하기도 했기에 자연스럽게 연구로 이어지게 됐다”고 술회했다.

그가 도서관을 찾아 한인에 관한 기록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 1974년이니 지금까지 42년째 한인사 연구에 매달려온 셈이다.

1950년대 사할린에는 해방 전 징용으로 건너온 남한 출신 2만 3천 명, 해방 후 북한에서 노동자 파견 등으로 온 2만 6천 명,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돌아온 3천여 명 등 세 그룹의 한인이 있었다.

쿠진 교수는 “당시 소련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했기에 북한 노동자 출신은 북한 국적을 취득했고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으나 강제 동원됐던 남한 출신의 한인들은 대부분 무국적자로 남았다”고 설명했다.

소련 정부는 무국적자에 대한 불이익을 하나씩 해결해 1960년 초에는 거주 이전의 제한 외에는 대부분 국적자와 같이 대했다.

영주귀국자의 삶을 연구하기 위해 3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4천300여 명의 영주귀국자 가운데 80% 이상이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며 “이들은 한 가지를 아쉬워했는데 바로 사할린에 두고 온 자식들을 맘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할린 한인의 이주 역사는 반복되는 이산이 특징입니다. 징용에 의해 고향의 가족과 첫 번째 이산을 했고, 패망을 목전에 둔 일제가 일본 규슈(九州) 지방으로 3천여 명을 배치해 사할린의 가족과 두 번째 이산을 경험했죠. 그리고 남한 영주귀국 대상을 1945년 이전 출생자와 배우자 및 장애인 자녀에 한정함으로써 빚어진 가족의 이산이 세 번째입니다.”

학문 연구에 정년이 없다며 연구열을 불태우는 노 교수는 사할린 연구와 관련한 마지막 연구 과제로 ‘개인사’의 기록을 꼽았다.

”사할린 한인들은 차별을 딛고 주류 사회에서 우뚝 선 민족입니다. 구소련 시절 정부 표창을 받으며 영웅 대접을 받았던 사람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업가, 대학 총장 등 교육가, 문화·예술계 유명 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 많습니다. 해마다 유명을 달리하는 이들의 개인사를 기록해 하나로 묶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쿠진 교수는 “주류 사회에 한인의 위상도 높이고 한인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연구”라고 강조했다.

22일 한국이민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 ‘사할린 한인사 국제학술 세미나’에서 한인사 연구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인 그는 “이산의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할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사할린에 남은 후손 중에 영주귀국한 부모의 부고를 듣고도 경제적 형편으로 한국에 와서 초상을 치르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는 이산의 비극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가족이 모여 살 수 없다면 영주귀국자의 사할린 왕래에 기간 제한이라도 없어져야 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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