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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눈감는 순간에도 ‘죽을 권리’ 쓰다

[부고] 눈감는 순간에도 ‘죽을 권리’ 쓰다

입력 2015-01-05 00:14
업데이트 2015-01-0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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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존엄사 합법화’ 주장 데비 퍼디 지난 달 삶 마감…마지막 편지 공개 “스스로 죽는 과정은 너무 비인간적”

“남편을 사랑합니다. 내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전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은 점차 견딜 수 없게 됐고 긍정적인 면들이 부정적인 면들과 균형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4일 인디펜던트는 ‘죽을 권리’를 주장하다가 지난달 23일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51년간의 삶을 마감한 영국인 데비 퍼디의 마지막 편지를 공개했다. 1995년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은 퍼디는 존엄사를 허용한 스위스로 가려다 남편 오마르 푸엔테가 자살 방조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법 개정 운동을 벌여 2009년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고, 검찰은 2010년 존엄사의 구체적 기준을 정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퍼디는 마지막 편지에서 다시금 존엄사의 전면 허용을 주장했다. 퍼디는 “검찰이 만든 가이드라인은 살날이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말기 환자들에게나 적합할 뿐 불치의 병으로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퍼디의 죽음 이후 영국에선 다시 존엄사 합법화 운동이 일고 있다.

퍼디는 2009년 승소 이후 한때 행복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죽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이 더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과 같았다. 남편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놀러 다니고 식사를 하며 즐겁게 보낸 그 시간은 정말 환상적이었다”고 적었다.

위기는 2012년에 왔다. 증세가 악화되면서 온몸을 쓸 수 없게 됐다. 몇 주간 휠체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고 등창도 생겼다. 주변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있었지만 애써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퍼디는 “나만의 독립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퍼디는 마리큐리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한 뒤 이번엔 스스로 죽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식사도, 약도 끊었다. 퍼디는 존엄사를 전면 허용해야 하는 근거로 스스로 죽는 이 과정이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지적했다. 길게는 1년 정도 죽어 가는 걸 보여 줘야 하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고통스럽게 한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며 “죽겠다는 결심 자체도 어려운데 죽는 방법을 선택하고 통제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인디펜던트는 퍼디가 죽기 전 잠깐 기력을 회복했을 때 이 편지를 썼다고 전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5-01-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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