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 타계

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 타계

입력 2011-02-01 00:00
업데이트 2011-02-01 15:5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한국 미술사학계의 태두로 꼽히는 초우(蕉雨) 황수영(黃壽永) 박사가 1일 오후 3시10분 별세했다. 향년 93세.

이미지 확대
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 연합뉴스
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
연합뉴스
고인은 지난해 타계한 동갑내기 진홍섭 박사, 그리고 최순우(1916~1984) 전 국립박물관장과 같은 북한 개성 출신으로, 식민지시대 개성박물관장으로 있던 고유섭(高裕燮. 1905~1944) 문하에서 함께 미술사에 눈을 떴다는 공통점으로 한국미술사학계에서는 ‘개성 3인방’ 중 한명으로 꼽힌다.

고인은 해방 이후 한국미술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중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1918년 태어난 고인은 식민지시대 경복중학교와 일본 마쓰야마(松山) 고등학교를 거쳐 1941년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광복 직후 귀국했다.

귀국 후 개성상업중학교 교감으로 일하다가 1947년 이후 50년까지는 국립박물관에 투신해 박물감을 지냈으며 1956년 동국대 교수로 임용돼 박물관장과 대학원장을 거쳐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이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1962년 문화재위원회에 위원으로 입성,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1981년에는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 한ㆍ일 국교정상화회담에서 문화재 반환협상의 실무대표로 활약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하성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동국대 총장을 지낸 저명한 역사학자 이선근 박사 추모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1994년에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에 선출됐다.

고인은 이처럼 비단 미술사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문화와 교육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족적을 남겼다.

전공인 미술사 분야에서는 초창기 미술사학자가 대개 그렇듯이 고인 또한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도 불교미술에 속하는 탑파와 불상, 공예 분야가 많으며 학계에 미친 영향력이 워낙 큰 까닭에 그의 훈도를 직간접적으로 받지 않은 후학이 없다시피 하다.

그가 직접 길러낸 제자로는 정영호 단국대석주선박물관장,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호관 전 국립박물관 미술부장, 미술사학자 맹인재 씨 등이 있다.

고인은 또 전국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수많은 유적과 유물을 발견해 냈다.

서산마애삼존불상과 팔공산 제2석굴암, 문무대왕 해중릉, 울주 반구대 암각화 유적은 그의 손길을 거친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문화재 복원에도 깊이 관여했음은 물론이다.

단독 저서는 ‘한국불상연구’와 ‘불교미술’을 비롯해 33권에 이르며 편저가 20권, 발표 논문은 220여편에 달한다.

이러한 공적과 석굴암 연구 복원 업적으로 1960년대에 대통령 표창을, 1996년에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호종(용인대 교수) 씨와 딸 유자(명지전문대 명예교수) 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4일 오전 8시다. ☎(02)3410-3151.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금융투자 소득세’ 당신의 생각은?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초과분에 한해 20%의 금투세와 2%의 지방소득세를, 3억원 이상은 초과분의 25% 금투세와 2.5%의 지방소득세를 내는 것이 골자입니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과 유예,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