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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수용소 10년-테러범 재판현장 가다 (2)] 알카에다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나는… ‘살인적 보안검색’

[관타나모수용소 10년-테러범 재판현장 가다 (2)] 알카에다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나는… ‘살인적 보안검색’

입력 2012-01-19 00:00
업데이트 2012-01-1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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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으로 접한 ‘테러범’은 여유로워 보였다. 그는 환자복처럼 헐렁한 흰옷을 입고 법정에 들어섰다. 작은 키에 올리브색 피부의 그는 배가 잔뜩 나온 ‘사장님 몸매’였으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털레털레 걸었다. 목에는 금색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수갑을 차지 않은 그의 자유로운 양팔을 군인들이 팔짱을 끼고 걸었다. 군인 10여명의 호송을 받으며 변호인석 앞줄 맨 끝에 앉았다. 2000년 10월 미국 군함 ‘USS 콜’에 대한 알카에다의 자살 폭탄테러를 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아브드 알라힘 알나시리(47)였다. 당시 테러로 미군 19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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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현지시간) 쿠바 관타나모 기지 내 임시 언론 브리핑룸에서 테러용의자 아브드 알라힘 알나시리 재판의 수석 검사 마크 마틴스 해군 준장이 검찰 측 입장을 역설하는 것을 스티븐 레이스(왼쪽 두 번째) 해군 소령 등 변호인 3명이 나란히 앉아 듣고 있다. 미군 살해 용의자를 기소한 측도 미군이고 변호하는 측도 미군인 셈이다. 이들은 재판정뿐 아니라 기자회견장에서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17일 오후(현지시간) 쿠바 관타나모 기지 내 임시 언론 브리핑룸에서 테러용의자 아브드 알라힘 알나시리 재판의 수석 검사 마크 마틴스 해군 준장이 검찰 측 입장을 역설하는 것을 스티븐 레이스(왼쪽 두 번째) 해군 소령 등 변호인 3명이 나란히 앉아 듣고 있다. 미군 살해 용의자를 기소한 측도 미군이고 변호하는 측도 미군인 셈이다. 이들은 재판정뿐 아니라 기자회견장에서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17일 오전(현지시간) 알나시리에 대한 2차 공판 참관 절차는 백악관 취재보다 까다로웠다. 법원 입구에서부터 카메라와 녹음기는 물론 볼펜과 수첩 등 기초적인 취재 도구까지 압수당했다. 수첩 등의 철심이 흉기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전날 자신들이 발부한 출입증도 인정하지 않고 여권을 요구했다. 기자의 지갑을 가리키며 “안을 살펴봐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졸지에 ‘무소유’ 차림으로 10여m 떨어진 법정 건물에 다다랐더니 또 다른 검색대가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심지어 기자들을 인솔해 간 공보장교들도 몸수색을 당했다. 알카에다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나는 ‘과잉 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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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내 ‘제1 법원’ 전경. 미국 군함 ‘USS 콜’ 테러 용의자인 아브드 알라힘 알나시리에 대한 재판은 이 건물보다 신식인 ‘제2 법원’에서 진행됐지만, 미군측은 사진촬영을 금했다. 관타나모 수용소 재판 사상 첫 사형 선고 대상인 이 사건 선고는 빨라야 5년 뒤에나 내려질 전망이다.
17일(현지시간)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내 ‘제1 법원’ 전경. 미국 군함 ‘USS 콜’ 테러 용의자인 아브드 알라힘 알나시리에 대한 재판은 이 건물보다 신식인 ‘제2 법원’에서 진행됐지만, 미군측은 사진촬영을 금했다. 관타나모 수용소 재판 사상 첫 사형 선고 대상인 이 사건 선고는 빨라야 5년 뒤에나 내려질 전망이다.
법정 앞에서 한번 더 신원을 확인한 뒤 그들은 ‘안전한‘ 볼펜과 수첩을 지급했다. 볼펜은 뜻밖에도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20여명의 비정부기구(NGO) 관계자와 10여명의 테러 희생자 유족도 방청석에 함께했다. NGO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경쟁적으로 입장을 설파했다. 진보 성향의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소속 데번 셰피는 “관타나모 수용소는 폐쇄하고 테러 용의자 재판은 일반 용의자와 동등하게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 소속 컬리 스팀슨은 “확실한 대안도 없이 관타나모 수용소를 없애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등 극명한 이념 차를 드러냈다.

장병들은 “재판 장면을 그림으로 스케치해서는 안 된다.”고 미리 주의를 줬다. 방청석과 재판정은 대형 투명 유리창으로 격리돼 있었다. 2중 방탄·방음창이었다. 재판 음향은 방청석에 걸린 TV를 통해 듣는 구조였다. 재판정은 자리마다 컴퓨터 모니터가 설치돼 있는 등 최신식이었다. 변호인석은 자리가 30여개인 반면 검찰석은 9석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 자리에 앉아 있는 검사와 변호인은 각각 7명씩으로 비슷했다.

알나시리가 법정에 들어서자 일부 유가족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어 오전 10시 판사가 입장하면서 재판이 시작됐다. 알나시리는 벽쪽에 나란히 앉은 병사 10여명의 감시 아래 헤드폰으로 아랍어 통역을 들으며 재판에 임했다. 그는 손으로 턱을 괴고 다리를 꼬기도 했다. 검사도, 변호인도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일종의 ‘국선 변호인’이었다. 변호인 스티븐 레이스 해군 소령은 재판 후 동료 군인 살해 테러 용의자를 변호하는 심경을 묻는 기자에게 “모든 피고인은 법적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감정을 배제하고 변호인으로서의 본분에 전념하고 있다.”고 답했다.

재판은 사건 본질보다는 재판 절차를 둘러싼 공방이 주를 이뤘다. 변호인은 군사재판을 민간재판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검찰은 재판이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인권과 안보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국의 고민이 재판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알나시리는 한마디도 없이 재판 과정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1시간 30분 만에 오전 공판이 마무리되자 변호인들이 알나시리에게 악수를 건넸다. 알나시리는 법정을 나가면서 방청석 쪽을 한동안 쳐다봤다. 그러나 한 장교는 “법정 안에서는 방청석 쪽을 볼 수 없는 특수 유리창”이라고 했다. 알나시리의 얼굴을 보고 유가족들의 눈에 다시 이슬이 맺혔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왔다는 60대 남성은 “외동딸이 USS 콜에서 복무하다 테러로 사망했다.”면서 “(소감은) 선고가 내려진 뒤 말하고 싶다.”며 즉답을 피했다. 차마 더 대답을 채근할 수 없었다.

한때 779명의 테러 용의자까지 수감했던 이 기지에는 현재 171명이 수감돼 있다.

글 사진 관타나모(쿠바)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2012-01-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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