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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STORY] 영정사진 찍고 유언장 쓰고…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졌다

[week&STORY] 영정사진 찍고 유언장 쓰고…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졌다

입력 2014-03-15 00:00
업데이트 2014-03-15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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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기자 임종체험 ‘힐 다잉’ 직접 해보니

최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일가족 동반자살이 잇따르고 있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 삶의 만족도는 26위에 그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0~2010년 자살 사망률은 101.8%가 증가했다. 이처럼 ‘힐링’(치유)이 절실한 세태에서 임종 체험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난다는 임종 체험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본지 기자 두 명이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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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효원힐링센터에서 진행된 ‘힐다잉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효원힐링센터에서 진행된 ‘힐다잉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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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여성이 자신의 영정 사진 옆에 놓인 유언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여성이 자신의 영정 사진 옆에 놓인 유언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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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이슬기 기자가 수의를 입은 채 관 속에 앉아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본지 이슬기 기자가 수의를 입은 채 관 속에 앉아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효원힐링센터. 화창한 봄날에 ‘힐다잉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어두운 느낌과는 달리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동반체험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참여한 13명은 각자 다른 고민과 이유를 가지고 센터를 방문했다. 여성이 9명, 20대가 절반 이상이었다.

혼자 찾아온 회사원 김모(43) 씨는 “사업을 하다가 직장에 취직했지만 얼마 전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크게 타격을 입고 여러 가지로 힘들어졌다”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에 전환점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안모(34·여·회사원) 씨는 “목사님 추천으로 왔다”면서 “이직을 생각하면서 이곳저곳 면접을 보러 다니는데 마음을 정리할 겸 왔다”고 말했다.

●영정 사진 촬영 죽음을 준비하는 첫 단계로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터지면서 사람들의 멋쩍은 표정이 카메라에 담겼다. 잠시 뒤 검은 테를 두른 사진을 받아 든 사람들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김씨는 “마음을 아직 안 비워서 그런지 표정이 부자연스럽다”면서 “웃는 것도 아니고 찡그린 것도 아니고, 아직도 불만스러운 게 사진에 묻어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유언장 쓰기 영정 사진을 앞에 놓은 이들이 유언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눈물을 훔치거나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한 20대 남성은 “평소에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사랑하고 고맙다”고 썼다.

재산 분할과 장례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적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한 참가자는 “시신을 화장한 뒤 어머니가 계신 산소에 뿌려달라”면서 “재산은 사랑하는 강아지 초롱이를 돌봐줄 사람에게 1000만원을 주고 나머지는 모두 봉사 단체 10곳에 나누어 기부하겠다”고 적었다. 또 “시신을 장기기증이나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고 장례식 때 화환을 받지 말라”고 썼다. “기억이란 빚을 세상에 남기고 싶지 않으니 빨리 잊어달라”고 유언장을 읽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입관 ‘쾅~’. 세상과 단절을 의미하는 소리가 들렸다. 관 뚜껑이 닫히면서 정적과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외부의 흐느낌도 들리지 않는 시간이 15분간 이어졌다. 관 속에 머문 짧지 않은 동안, 기자는 죽음의 순간에 강력한 삶의 기운을 느꼈다. 또 다른 기자는 “관 뚜껑이 닫히자 좁은 공간에서 내 발 냄새가 느껴졌다”면서 “그 순간 나는 아직 살아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체험이 끝난 뒤 참가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체험 이전과 이후에 별로 달라진 것을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보인 배모(40·여·취업준비 중) 씨는 “체험이 짧아서 충분이 몰입하지는 못했다”면서 “그래도 관에 누워 있던 순간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에서 온 한선규(42·자영업) 씨는 “이곳에 온 계기에 대해서는 관 속에 묻고 왔기 때문에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살아갈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힐다잉’이란 ‘힐링’(healing)과 ‘죽음’(dying)의 합성어로 국내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웰다잉’(well-dying) 또는 임종 체험이라고도 한다. 임종체험을 통해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취지다. 이 체험 프로그램은 미국 의학박사이자 심리학자인 레이먼드 무디 박사의 연구에 토대를 두고 있다.

무디 박사는 1960년대 임사체험(임상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살아나는 현상)을 겪은 108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임사 이전과 이후의 삶에 관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죽기 전엔 주위에 폐를 끼치며 살아온 사람들이 죽음에서 깨어나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 삶’을 살게 된 임사체험에 힌트를 얻어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임종체험 프로그램이 보험회사나 상조회사 등을 중심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임사체험인 셈이다. 현재 상조회사와 교육단체, 종교단체 등 전국 10여 곳에서 상시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업 연수 프로그램으로도 쓰인다. 효원힐링센터의 정용문 센터장은 “지난해 1월 문을 연 이후 현재까지 6000명 이상이 참여했다”면서 “학교나 회사 등에서 단체로 오기도 하고,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균 수명은 길어졌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대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살은 매우 강박적이고 비관적인 심리 상태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임종체험이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힐링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종체험이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보다 체험 위주로만 흐를 때 죽음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임종 체험 전후의 심리 상태나 자존감 등에 대한 조사나 분석이 없어 호기심 채우기에 그칠 수 있다”면서 “한 번의 체험만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웰다잉 문화를 만들어가기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삶과 죽음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보다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진탁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장은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오랜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생사에 대해 연구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임종 체험 행사가 상조회사나 보험회사 홍보용으로 진행되는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권영구 한국웰다잉연구회 회장은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죽음 체험을 하거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웰다잉은 일시적인 죽음 그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면서 “전문적인 교육과 자격을 갖춘 교육기관 등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4-03-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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