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 옆에 있으면 그냥 오징어.” 알 수 없었다. 오징어가 못생겼다는 뜻이라니 얼른 들어오지 않았다. 오징어는 바다에선 공작으로 불린다. 번식기 수놈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암놈을 유혹하면 곧 반해 버리고 만다. 수놈이 암놈의 팔짱을 낄 때 암놈도 화려하게 변한다. 길쭉한 몸매를 지녔고 10개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들은 사랑을 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 이 가운데 긴 두 개의 다리는 특히 아름다운 빛을 낸다.
오징어는 옛날부터 친근한 먹거리였고 건강식품이었다. 타우린이라는 성분이 있어 기억 능력을 향상시켜 주고, 치매 예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혈압 조절, 당뇨 예방, 피로회복과 간 기능 개선에도 좋다고 한다. 맥주를 마실 때 오징어 안주가 그만인 데도 이유가 있다. 오징어가 알코올 분해를 돕기 때문이다. 땅콩은 오징어의 콜레스테롤이 몸에 쌓이는 것을 막아 준다. 그래서 오징어는 땅콩과 잘 맞기도 한다.
오징어는 꾀가 많은 동물로 인식돼 왔다. ‘자산어보’와 속담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귀양지 흑산도에서 썼다. 이 자산어보에는 중국의 ‘남월지’를 인용해 “오징어는 까마귀를 좋아한다. 물 위에 떠 있다가 까마귀가 오징어를 보고 죽은 줄 알고 쪼려 할 때 까마귀를 잡아 물속으로 들어가 잡아먹는다”는 내용이 있다. ‘오징어 까마귀 잡아먹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 ‘꾀를 써서 힘들이지 않고 일을 해 낸다’는 뜻이다.
‘오징어’라는 명칭은 오적어(烏賊魚)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오적어에서 ‘오적’은 까마귀(烏)를 잡아먹는 도적(賊)이라는 의미다. 오징어는 오중어·오증어·오적이·오직어 등으로도 불렸다. 오즉(烏?)·남어(纜魚)·묵어(墨魚)·흑어(黑魚)라고도 했다.
남녘의 ‘오징어’는 북녘으로 가면 ‘낙지’로 불린다. 그러니 북녘 땅에서 ‘낙지’를 달라고 하면 ‘오징어’를 줄 수 있다. 북녘의 ‘조선말대사전’에 ‘낙지’는 이렇게 풀이돼 있다.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았고, 띄어쓰기도 우리와 다르다.
“바다에서 사는 연체동물의 한가지. 몸은 원통모양이고 머리부의 량쪽에 발달한 눈이 있다. 다리는 열개인데 입을 둘러싸고 있다.”
다리가 열 개라는 데서 남녘의 ‘오징어’를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다리가 여덟 개면 낙지, 열 개면 오징어라고 한다. 남녘의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다음과 같다.
“문어과의 하나. 몸의 길이는 70㎝ 정도이고 길둥글며 회색인데 주위의 빛에 따라 색이 바뀐다. 여덟 개의 다리가 있고 거기에 수많은 빨판이 있다.”
광복은 곧 분단으로 이어졌다. 빛이었지만 어둠이었다. 분단은 영토만 가르지 않았다. 모두의 삶도 갈랐다. 말과 글은 달라져 갔다. 우리가 자랑하는 문자 ‘한글’은 북녘에서 ‘조선글’, ‘한국어’는 ‘조선어’가 됐다. 모두가 즐겨 먹는 ‘오징어’도 서로 달리 쓰는 말이 됐다. 서로를 모른다는 사실을, 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 알려 준다.
이경우 기자 wlee@seoul.co.kr
오징어는 옛날부터 친근한 먹거리였고 건강식품이었다. 타우린이라는 성분이 있어 기억 능력을 향상시켜 주고, 치매 예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혈압 조절, 당뇨 예방, 피로회복과 간 기능 개선에도 좋다고 한다. 맥주를 마실 때 오징어 안주가 그만인 데도 이유가 있다. 오징어가 알코올 분해를 돕기 때문이다. 땅콩은 오징어의 콜레스테롤이 몸에 쌓이는 것을 막아 준다. 그래서 오징어는 땅콩과 잘 맞기도 한다.
오징어는 꾀가 많은 동물로 인식돼 왔다. ‘자산어보’와 속담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귀양지 흑산도에서 썼다. 이 자산어보에는 중국의 ‘남월지’를 인용해 “오징어는 까마귀를 좋아한다. 물 위에 떠 있다가 까마귀가 오징어를 보고 죽은 줄 알고 쪼려 할 때 까마귀를 잡아 물속으로 들어가 잡아먹는다”는 내용이 있다. ‘오징어 까마귀 잡아먹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 ‘꾀를 써서 힘들이지 않고 일을 해 낸다’는 뜻이다.
‘오징어’라는 명칭은 오적어(烏賊魚)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오적어에서 ‘오적’은 까마귀(烏)를 잡아먹는 도적(賊)이라는 의미다. 오징어는 오중어·오증어·오적이·오직어 등으로도 불렸다. 오즉(烏?)·남어(纜魚)·묵어(墨魚)·흑어(黑魚)라고도 했다.
남녘의 ‘오징어’는 북녘으로 가면 ‘낙지’로 불린다. 그러니 북녘 땅에서 ‘낙지’를 달라고 하면 ‘오징어’를 줄 수 있다. 북녘의 ‘조선말대사전’에 ‘낙지’는 이렇게 풀이돼 있다.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았고, 띄어쓰기도 우리와 다르다.
“바다에서 사는 연체동물의 한가지. 몸은 원통모양이고 머리부의 량쪽에 발달한 눈이 있다. 다리는 열개인데 입을 둘러싸고 있다.”
다리가 열 개라는 데서 남녘의 ‘오징어’를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다리가 여덟 개면 낙지, 열 개면 오징어라고 한다. 남녘의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다음과 같다.
“문어과의 하나. 몸의 길이는 70㎝ 정도이고 길둥글며 회색인데 주위의 빛에 따라 색이 바뀐다. 여덟 개의 다리가 있고 거기에 수많은 빨판이 있다.”
광복은 곧 분단으로 이어졌다. 빛이었지만 어둠이었다. 분단은 영토만 가르지 않았다. 모두의 삶도 갈랐다. 말과 글은 달라져 갔다. 우리가 자랑하는 문자 ‘한글’은 북녘에서 ‘조선글’, ‘한국어’는 ‘조선어’가 됐다. 모두가 즐겨 먹는 ‘오징어’도 서로 달리 쓰는 말이 됐다. 서로를 모른다는 사실을, 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 알려 준다.
이경우 기자 w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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