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 보관하듯, 식물 정보 정리… “120년 전 한국산 노각나무도 美에 뿌리내려”[계절실종: 식물을 답을 알고 있다]

도서관에 책 보관하듯, 식물 정보 정리… “120년 전 한국산 노각나무도 美에 뿌리내려”[계절실종: 식물을 답을 알고 있다]

김성은 기자
김성은 기자
입력 2024-11-04 23:59
수정 2024-11-0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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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물 채집’ 美 아놀드수목원

목본식물 연구 중심지로 인정받아
“나무들 더 사라지기 전 조사·기록”
인류가 ‘식물 보전’ 함께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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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 아놀드수목원에는 1905년 구한말 한국에서 채집해 가서 심은 한반도 식물의 후손들이 자라고 있다. 아놀드수목원에는 1918년 한반도를 찾은 탐험대가 씨앗을 채집해 간 뒤 1943년 수목원에 심은 한국산 노각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사진은 나무의 이력을 기록해 둔 표찰.
미국 보스턴 아놀드수목원에는 1905년 구한말 한국에서 채집해 가서 심은 한반도 식물의 후손들이 자라고 있다. 아놀드수목원에는 1918년 한반도를 찾은 탐험대가 씨앗을 채집해 간 뒤 1943년 수목원에 심은 한국산 노각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사진은 나무의 이력을 기록해 둔 표찰.


“나무는 인류 공동의 자산입니다. 더 사라지기 전에 조사하고 기록해 둬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 산하 아놀드수목원 연구원인 마이클 도스만 박사는 지난달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소중하게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다. 수첩에는 한국의 노각나무, 개나리, 단풍나무, 소나무 등 20여종의 식물 이름이 빼곡했다. 도스만 박사는 동료 크리스 코플랜드 부매니저와 함께 2주 동안 전국 20여곳에서 식물을 채집하고 기록했다.

아놀드수목원 연구진이 한국 식물 탐사에 나선 건 1977년 이후 47년 만이다. 서울대 장진성 교수 초청으로 탐사가 성사됐다. 1905년과 1917년쯤 한반도 전역에서, 1970년대에는 남한 지역에서 식물을 채집했다. 특히 120여년 전인 1905년 아시아 대탐사 결과 보스턴으로 건너가 자라고 있는 한국산 노각나무의 후손 역시 이번 탐사의 채집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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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내 한국, 중국, 일본 식물이 식재돼 있는 아시아 정원의 입구 표지판.
수목원 내 한국, 중국, 일본 식물이 식재돼 있는 아시아 정원의 입구 표지판.


아놀드수목원이 해외에서 들여와 재배를 시도했던 6만 9994개의 식물 가운데 대다수가 죽고 살아남은 건 소수에 불과하다. 그중 한반도에서 건너간 식물의 후손 596개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를테면 원래 한반도 채집종이지만 미국에서 개량한 미국 라일락 시장 점유율 30%에 달하는 ‘미스킴라일락’이나 노각나무, 개나리, 미선나무, 구상나무 등이 아놀드수목원의 일원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온대 기후의 식물을 모두 모으는 것. 하버드대가 1872년 미국 최초 공립수목원으로 부설한 아놀드수목원이 전 세계 식물 채집을 고집스럽게 이어 가는 이유는 이와 같은 그들의 사명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전 세계 식물 채집·조사·기록이라는 기초연구를 120년 넘게 계속한 끝에 아놀드수목원은 학계에서 목본식물 연구의 중심지라는 입지를 지니게 되었다.

기후 위기 여파로 나무들의 돌연한 죽음이 드물지 않은 상황에서 이 수목원이 보여 준 기초과학에 대한 열정은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실험실에서 식물의 형질과 유전적 특성을 탐구하는 게 20세기 식물학의 주된 연구 주제였다면, 기후 위기를 체감 중인 21세기에는 생태계 전반에 걸친 상호작용 연구가 중심이 되고 있다. 다양한 나무에 대한 정보를 많이 쥔 쪽일수록 연구 및 실용화 역량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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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방한한 아놀드수목원 연구원 마이클 도스만(왼쪽 첫 번째) 박사와 크리스 코플랜드(오른쪽 첫 번째) 부매니저, 가운데는 이들과 공동으로 조사한 장진성 서울대 교수.
올여름 방한한 아놀드수목원 연구원 마이클 도스만(왼쪽 첫 번째) 박사와 크리스 코플랜드(오른쪽 첫 번째) 부매니저, 가운데는 이들과 공동으로 조사한 장진성 서울대 교수.


도스만 박사팀 역시 이 대목을 강조했다. ‘타국의 식물을 채집해 가는 것이 제국주의 문화재 약탈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날 선 질문에 도스만 박사는 “전 세계적인 식물 보전 협력과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에 수집한 한국 식물의 정보는 미래 연구원들에게 연구할 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며 “미래 연구자 중 누가 꺼내 읽을지, 아예 안 읽을지 몰라도 마치 도서관에 책을 보관해 두듯이 식물들의 정보를 정리해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977년에도 지구의 식물을 보전하는 일은 중요했지만 그때는 전 세계 나무 가운데 3분의1이 멸종위기에 처할 정도로 응급상황은 아니었다”면서 “이제 전 세계 식물학자와 원예가를 넘어 전 인류가 함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 대선 경선을 참관하기 위해 지난 8월 미국을 방문했던 한국 의원단은 아놀드수목원을 탐방한 뒤 식물 보전이 외교와 접점을 지니는 대목에 주목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에서 120년 전 채집된 토종 식물들이 미국에서 자라고, 채취 당시 조선시대 갓을 쓴 선조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관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라면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식물 보전을 위해 우리나라와 해외 기관 간 연계 노력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24-11-0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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