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사이드]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 새내기 주무관 4명에 들어본 ‘그들의 얘기’

[주말 인사이드]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 새내기 주무관 4명에 들어본 ‘그들의 얘기’

입력 2013-10-19 00:00
업데이트 2013-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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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직 하는 일 다해 ‘뿌듯’… 성과금 없지만 일할 수 있어 좋아요”

‘시간제 공무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계약직으로 일하는 시간제 공무원이다. 이들은 월~목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금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근무하면서 주 35시간을 일한다. 2870여명(지난해 12월 기준)이 공직사회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시간제 공무원은 ‘일반직’이다.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 목표에 따라 탄생하게 될 공무원이다. 주 20시간(하루 4시간) 근무하면서 정년은 일반직 공무원처럼 보장되는 자리라 관심이 크다. 업무 형태나 일자리 질적인 수준 등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궁금증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의문을 해소할 길은 비슷한 일을 한 경험자에게 듣는 것뿐. 경기 고양시 각 동(洞)에서 일하는 새내기 주무관 4명을 만나 ‘시간제 공무원’의 모든 것을 낱낱이 풀어 봤다.

지난 16일 경기 고양시청 청사 앞에서 올해 고양시 시간제 계약직 ‘마’급 공무원으로 선발된 고두환(왼쪽부터), 고아름, 김미진, 현종원씨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호정 기자 hojeong@seoul.co.kr
지난 16일 경기 고양시청 청사 앞에서 올해 고양시 시간제 계약직 ‘마’급 공무원으로 선발된 고두환(왼쪽부터), 고아름, 김미진, 현종원씨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호정 기자 hojeong@seoul.co.kr
지난 16일 고양시청 앞 카페에서 이들을 만났다.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해 얼굴 마주칠 일이 없었던 터라 다들 데면데면했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는 동안 살짝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각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공직의 보람과 동병상련의 공감을 나누더니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의 일상을 편안하게 털어놨다.

현종원(46·여)씨는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했다. 2011년 큰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자 비싼 등록금이 신경 쓰였다. 더이상 남편에게만 가계 수입을 맡길 수 없었다. 결국 현씨는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찾은 것이 덕양구청 육아 휴직자 대체인력 자리였다. 대체인력으로 일하면서 공무원 세계를 살짝 경험하고는 지난 9월부터 행신3동 주민센터에서 정식 공무원이 됐다.

“일반직 공무원처럼 저도 제 이름으로 공문서를 작성해요. 시간제 계약직이라고 해서 보조 업무를 하는 게 아니에요. 책임을 덜 지는 것도 아니고요. 민원 처리 과정에서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모두 처리해야 돼요. 책임감이 따를 수밖에 없죠.”

일산서구 일산3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미진(40·여)씨 역시 맏아들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앞치마를 벗고 직장일을 시작했다. 그는 공무원이 되기 전과 후의 차이를 실감했다. “주민으로 (주민센터에) 왔을 때는 공무원들 모습이 마냥 평온해 보였어요. 퇴근 시까지 편하게 앉아서 일하다가 귀가하는 줄 알았는데, 일과 후에도 계속 일을 하더라고요.” 김씨가 하는 일은 많았다. 미술, 댄스스포츠, 요가 등 주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 기획부터 강사 섭외, 프로그램 운영 및 교육 시설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앞으로는 예산 부분까지 직접 챙겨야 한다. 김씨는 “저도 지금은 일과 중에 민원 처리하다가 미처 다른 업무를 못 해서 야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고두환(31)씨는 일산동구 풍산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다. 그 역시 쉴 틈이 없다. 기초생활비, 양육수당, 보육료, 장애인 연금 신청을 받으면 수급 기준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또 실태조사를 위해 저소득 가정을 방문하는 일도 필수다.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다.

“복지 부문에서는 특히 정보를 잘못 알려 주면 큰일 나요. 가령 매월 15일 이전에 보육료를 신청하면 신청한 달부터 보육료가 지급돼요. 그런데 16일 이후에 신청하면 보육료가 그 다음 달에 나와요. 만일 16일 이후에 신청해도 그 달 보육료가 나간다고 말하면 주민이 피해를 보잖아요.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실수하지 않으려고 매일 공부해요.”

이들 중 가장 어린 고아름(26·여·덕양구 능곡동 주민센터)씨는 대학 졸업 후 민간복지관에서 근무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지난 8월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내 합격했다. 공무원이 된 뒤 전에 없었던 걱정이 하나 늘었다고 했다.

“채용 형태만 계약직일 뿐이지 일반 공무원이 하는 일은 다 해요. 주말에 동네에서 나눔장터 등의 행사가 열리면 일하러 나가고요, 대설주의보 등이 발령되면 비상 근무도 같이 서요. 눈 오면 새벽부터 나와서 제설 작업을 해야 하는데, 곧 겨울이 오잖아요. 이제는 눈이 언제 오나, 눈 언제 치우나 벌써 이런 걱정을 하고 있어요.”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은 금요일에는 오전만 근무한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까지 남아서 초과 근무를 하는 일이 잦다. 이때 초과 근무 수당은 지급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성과금은 없다. 상여금이 이미 연봉에 반영돼 있어 명절 상여금도 없다. 공무원연금 적용 대상도 아니다. 하지만 이게 불평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다들 만족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전임 업무가 정해져 있어서 좋다”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고아름씨도 “내가 사는 동네 일을 하니까 일에 더욱 관심이 가고 책임감도 생긴다. 이제는 갖가지 동네 행사를 주위에 적극 알리고 있다”고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씨는 “주위 공무원들이 계약직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민원인을 상대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 상대가 아니라 협력 대상이다. 견제하는 일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동안 일하면서 겪은 독특한 경험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고씨는 “주민들이 간혹 철물점 어디 있느냐, 교통카드 어디서 만들어야 하느냐, 카센터가 어딨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다 아는 게 아니라서 난감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거절할 수는 없다. 최대한 설명해 드리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동안 대화는 어느덧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시간제 공무원 제도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들은 각자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정부에서 시행하려는 주 20시간 시간제 공무원이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죠. 제 근무 시간에 한 주민이 기초생활비 수급 신청을 하러 왔는데 서류가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다른 서류도 챙겨 와야 한다고 했는데, 그 주민이 제가 이미 퇴근한 이후에 주민센터에 온 거예요. 그때는 새로운 사람이 일을 하고 있겠죠. 주민은 다시 설명해야 하고, 제 다음 근무자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를 수 있죠.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인수인계를 매번 하는 것도 불편하고, 결국 업무 연속성이 떨어질 수 있어요.”(고두환씨)

“시간제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매일 민원을 접하는 일의 경우에는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제 공무원 일로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고아름씨)

“스스로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는 것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특히 본격적인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시간제 공무원 일자리가 어쩌면 (취직 기준에) 부족할 수도 있죠.”(현종원씨)

다소 우려하는 시각 속에서 발전적인 의견도 나왔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노후 준비를 하는 것도 녹록지 않은데 만일 시간제 공무원 일만 한다면 경제적으로 계속 어렵겠죠. 현재 시간제 공무원에게 겸직 및 영리 행위를 허용할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융통성을 발휘한다면 일단 (영리 행위 등을) 허용해 주고 대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직업에 한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김미진씨)

또 시간제 일자리가 경력단절 및 20대 후반~40대 초 기혼 여성에게는 좋지만 청년들에게는 자칫 외면당할 수도 있다. 고아름씨는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가 단순 업무 위주로 생긴다면 청년들의 자기 계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다. 전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일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3-10-1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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