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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바느질은 예술이 됐다…흑인 소녀들에 꿈 심어준 아프리카 작가 [김정화의 WWW]

엄마의 바느질은 예술이 됐다…흑인 소녀들에 꿈 심어준 아프리카 작가 [김정화의 WWW]

김정화 기자
입력 2022-01-08 16:37
업데이트 2022-01-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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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미술 작가 빌리 장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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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고 있는 빌리 장게와 작가의 모습. 작품이 온전하지 않고 군데군데 갈라지고 찢어진 것은 파편화된 인간의 기억을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다. 유튜브 캡처
인터뷰하고 있는 빌리 장게와 작가의 모습. 작품이 온전하지 않고 군데군데 갈라지고 찢어진 것은 파편화된 인간의 기억을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다.
유튜브 캡처
빌리 장게와(49)는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도 작품도 낯선 작가다. 그러나 해외에선 이미 유명하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박물관,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는데, 손바느질한 실크 조각을 정교하게 콜라주한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 서울 리만머핀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장게와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작품을 새로운 관객과 공유할 기회를 갖게 돼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프리카 작가는 어떻게 유럽·미국 미술관 휩쓸었나
빌리 장게와, ‘아이의 기쁨’(The Pleasure of a Child), 2021,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111×152㎝. 리만머핀 서울 제공
빌리 장게와, ‘아이의 기쁨’(The Pleasure of a Child), 2021,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111×152㎝. 리만머핀 서울 제공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태어난 장게와는 패션과 광고 업계에서 처음 커리어를 쌓았다. 이때의 경험은 장게와가 ‘직물’을 작품의 주요 테마로 쓰는 것과 연관이 깊다. 그는 직물을 통해 집안 내부와 도시 경관, 인물화를 통해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을 담아낸다.

장게와의 초기 작업은 보츠와나 지역의 야생 동식물을 수놓는 것이었지만 점차 흑인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개인의 관계와 경험을 작품에 녹였다. 그는 일상의 장면을 통해 사회를 만드는데 꼭 필요하지만 자주 간과되는 여성의 일을 묘사하는데 관심이 많다.

특히 장게와는 ‘여성의 노동’으로 여겨지는 바느질을 통해 예술의 새 장르를 개척했는데, 흑인 여성상에 대한 역사적 고정관념과 착취에 도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에는 식탁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부엌 한켠에 놓인 그의 작업대이기도 하다.
빌리 장게와, ‘Heart of the Home’, 2020,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136 x 110 cm. 리만머핀 서울 제공
빌리 장게와, ‘Heart of the Home’, 2020,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136 x 110 cm. 리만머핀 서울 제공
빌리 장게와, ‘Soldier of Love’, 2020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135 x 110 cm. 리만머핀 서울 제공
빌리 장게와, ‘Soldier of Love’, 2020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135 x 110 cm. 리만머핀 서울 제공
장게와는 “직물, 그리고 전통적으로 여성의 취미로 간주되는 바느질을 작업의 도구로 사용하는 건 스스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위이자 일상의 페미니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작품을 통해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하고 여성의 사생활을 보여주지만, 이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권장되지 않는 행위”라고 봤다. 여전히 전세계에서 수많은 여성, 특히 흑인 등 유색 인종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특히 아들을 낳은 이후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모성애로 전환됐다. 장게와의 작품 속에는 가족 구성원과 가정 내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한땀 한땀 놓은 섬세한 자수를 통해 그의 삶을 풍부하게 만든 아들, 친구, 가족을 묘사한다. 작품이 온전한 모양이 아니라 군데군데 갈라지고 찢어진 것은 파편화된 인간의 기억을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다.

“작품 통해 ‘일상의 페미니즘’ 실현…흑인 소녀들에게 영감 주고파”
빌리 장게와. 리만머핀 서울 제공
빌리 장게와. 리만머핀 서울 제공
가정이란 테마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에 의미가 깊다.

장게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내 몸이 가진 사회정치적 의미를 깨달았다. 언젠가는 일하면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제 목표는 세가지예요. 첫째는 제 가치를 작품에 반영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둘째는 세상에 목소리나 힘이 없어서 감히 꿈도 꿀 수 없다고 여기는 흑인 소녀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특정 분야의 인류애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번 전시는 서울과 영국 런던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각각 ‘혈육’(Flesh and Blood), ‘흐르는 물’(Running Water)라는 이름으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전시명은 장게와가 파리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네빌 브라더스의 곡 ‘선스 앤 도터스’(Sons and Daughters) 노랫말에서 영감을 받았다.
빌리 장게와, ‘내 모든 마음’(My Whole Heart), 2021,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50×22㎝. 리만머핀 서울 제공
빌리 장게와, ‘내 모든 마음’(My Whole Heart), 2021,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50×22㎝. 리만머핀 서울 제공
여기서 작가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작가가 가족, 노동,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며 만든 작업물을 소개한다. 2년간 이어진 팬데믹은 작가, 여성, 엄마로서의 삶 모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인한 상실, 죽음은 ‘현재’에 대한 힘을 깨닫게 했다. 장게와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봐야 했다. 판단력은 떨어졌지만, 공감 능력은 커졌다”며 “매일매일 내 욕망에 더 충실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가족에서 나아가 인류 공동체에 사랑과 희망을”
빌리 장게와, ‘달콤한 헌신’(Sweetest Devotion), 2021,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137×106㎝. 리만머핀 서울 제공
빌리 장게와, ‘달콤한 헌신’(Sweetest Devotion), 2021, 손바느질 실크 콜라주, 137×106㎝. 리만머핀 서울 제공
가장 가까운 공동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인류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도 전한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선보이는 아프리카 작가의 작품인데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이유다. ‘달콤한 헌신’(Sweetest Devotion) 같은 작품의 경우 빨강, 파랑, 노랑 등 동양의 전통 오방색을 연상케하는 소파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장게와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있는 ‘아샨티’라는 로컬 브랜드에서 만든 소파다. 이 소파나 은데벨레 수공예에서 보듯 아프리카 사람들도 ‘색’에 끌리는 것 같다”며 “한국 관객에게 문화적 의미가 있는, 공감 가능한 시각적 요소가 작품에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은데벨레는 남아공의 한 부족인데, 이들이 비즈로 장식하는 인형은 화려한 색채, 기하학적 무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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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장게와. 위키피디아 캡쳐
빌리 장게와. 위키피디아 캡쳐
작가는 “작품의 주제가 보편적이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며 “내 목표 중 하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점을 찾는 것이다. 지성을 갖고 작품을 평가하는 대신 경험을 공유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지구 공동체와 인류를 주제로 한 전시를 이어 가는 게 그의 목표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한국에 오지 못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한국 대중문화는 미디어에서 많이 등장해 익숙하다. 매우 개방적이고 창의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한국의 전통 직물 모양에 관심이 많다.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궁궐이나 절도 꼭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빌리 장게와는 누구·Billie Zangewa
1973 말라위 출생1995 남아공 로즈대학 예술사 취득2005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제라드 세코토 갤러리 개인전2016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문화센터, 네덜란드 로테르담 미술관 단체전 ‘Making Africa’

2017 미국 매스추세츠 현대미술관 단체전 ‘The Half-Life of Love’

2018 남아공 아트페어 ‘FNB 아트 조버그’ 특별 초청 아티스트 선정

모로코 알 마덴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단체전 ‘Second Life’

2019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 단체전 ‘I am…Contemporary Women Artists of Africa’

2020 프랑스 파리 갤러리 텅플롱 개인전

2021 리만머핀 서울·런던 개인전

김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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