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강제병합100년 - 한·일관계 현주소

한일강제병합100년 - 한·일관계 현주소

입력 2010-08-17 00:00
업데이트 2010-08-1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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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2일로 다가온 ‘한일강제병합 100년’은 지나온 한 세기의 역사를 매듭짓고 새로운 100년의 주춧돌을 놓는 역사적 이정표로서의 상징성이 있다.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과 일제강점기의 수탈, 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이은 해방,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협력과 갈등으로 점철돼온 역사의 굴곡을 딛고 한일 양국이 진정한 화해와 우호.협력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가는 출발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단순히 시의(時宜)적 상징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를 타고 있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일관계는 점차 양자적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다자적 협력구도로의 질적인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시점이다.

역사의 큰 굽이를 돌아선 한.일 양국이 이제 ‘과거’ 대신 ‘미래’를 키워드로 근본적인 관계 재정립을 모색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올라선 셈이다.

돌이켜보면 한.일관계의 지난 100년은 두개의 대조적인 ‘그림’으로 다가서고 있다. 강제병합의 짙은 그늘이 지배하고 있는 반목의 역사와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움트기 시작한 협력의 역사가 그것이다.

1910년 8월22일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이완용의 강제합병조약 조인으로 시작된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화는 우리 민족과 국가발전사에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준 비극의 시기였다. 그래서 ‘경술국치(庚戌國恥)’라는 용어가 ‘강제병합’과 함께 따라붙는다.

이 시기 일제가 안겨준 민족적 상처는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한국의 독립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며 한.일관계의 ‘암흑기’를 형성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965년 국교 정상화 때까지 양국정부 차원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1965년 6월22일 도쿄에서 양국이 조인한 국교정상화 조약은 한.일관계에 의미있는 전기를 가져왔다. 당시 경제개발을 위한 외화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3억 달러의 ‘경제협력자금’(청구권 자금)이 나라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종자돈이 된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당시 양국간 협정을 통해 개인피해 청구권이 법적으로 소멸되는 효과를 낳아 경제적 실리에 급급한 나머지 역사부채 청산의 기회를 희생시켰다는 비판도 엄존한다.

특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을 큰 숙제로 남기면서 한.일 과거사 갈등의 씨앗이 됐다. 결국 국교정상화는 ‘미완의 정상화’에 그친 셈이다.

이런 탓에 국교정상화 이후의 한.일관계는 큰 틀에서 협력의 길로 나아가면서도 갈등요인들이 끊임없이 내연(內燃)하는 비정상적인 관계가 됐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모순된 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양국의 ‘경제관계’는 비약적 성장을 거듭했다. 1965년 연간 1만여명에 불과하던 사람들의 왕래가 작년 기준으로 연간 464만명이 넘어섰다. 양국간 교역액은 연간 2억 달러에서 작년 712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는 중국, 미국에 이어 세번째 규모다.

이는 사회.문화 교류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한류로 양국간 쌍방향 문화교류가 활발해진 가운데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는 양국 국민들의 상호 인식과 호감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모멘텀이 됐다.

그러나 미완의 과거사 문제는 한.일관계의 성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질곡’으로 작용해왔다. 독도문제와 맞물려 잘못된 과거를 미화하고 우리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일본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이 때만 되면 망령처럼 살아나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자극했다.

물론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가 종전 50주년을 맞아 식민지배와 침략을 시인한 ‘무라야마 담화’가 대표적이다. 그 연장선에서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합의한 ‘신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선언’에 그쳤다. 일본측의 과거사 도발은 그 후로도 계속됐고 한.일관계는 지금껏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간 나오토(菅直人) 정부 총리가 10일 강제병합 100년 담화를 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재차 표명한 것은 상당한 의의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고 새로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열어나가겠다는 전향적 역사인식과 자세를 진지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사할린 동포지원, 징용피해자 유골 반환, 조선왕실의궤 반환 등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반성의 뜻을 표하려는 태도는 일본의 과거사 입장이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그러나 일본이 진정으로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 모델로 만들어나가려면 일회적 행사로 그칠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성실하게 과거사 후속작업을 매듭짓는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과거사 갈등의 불씨로 남은 징용피해자 보상과 위안부 배상문제에 대해 보다 과감한 문제해결의 자세를 보이고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도발’을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양국관계를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만드는 과제는 일본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도 일본을 감정적으로 몰아세우기 보다는 이성적으로 ‘어른스럽게’ 대응하면서 과거사 바로세우기의 ‘대의’와 우호협력 확대의 ‘실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래’를 향한 양국의 공동노력이 순조롭게 이어진다면 이번 강제병합 100년이 과거사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진정한 동반과 협력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제2 국교정상화’를 이루는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국이 지금 ‘과거’에 매달려 서로 에너지와 역량을 소모하기에는 함께 부딪히며 풀어가야할 ‘미래’의 도전이 너무 크다는게 외교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소모적인 양자적 대립관계에서 탈피해 한반도와 동북아, 글로벌 이슈에 공동대응하는 다자적 대등관계가 양국이 꿈꾸는 미래 공동비전의 핵심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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