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나와 통일] (19)조명철 통일교육원장

[나와 통일] (19)조명철 통일교육원장

입력 2011-06-14 00:00
업데이트 2011-06-14 00:4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남한이 北주민의 희망 돼야 기득권 함께 나누지 않으면 통일의 꿈은 요원합니다”

나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아바(ABBA)의 “I have a dream”이다. 대한민국에 온 것 자체가 나에겐 행운이고 혜택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꿈을 가지고 노력하고, 뭔가 이뤄내겠다는 나의 의지가 담긴 곡이기도 하다.
이미지 확대
조명철 통일교육원장
조명철 통일교육원장


●나의 컬러링 “I have a dream”

1994년 처음 남한에 왔을 때는 꿈이 있었다기보다는 증오가 가득했다. 중국이나 남한의 발전상을 알게 되면서 북한 김정일 정권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 아니 그보다는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에 분하고 답답해 참을 수가 없었다. 희망을 갖고 뭔가를 꿈꾼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 출신인 내가 남한으로 오는 것이 김정일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 몰려오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가족, 친척, 선후배,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매일같이 밀려왔다. ‘잘했어. 남한으로 오길 정말 잘했어.’라며 몇 번이고 나 자신을 다독인 뒤에야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사회에 온 것 자체가 혜택이고 기회인데 멋지게 살아가자. 남들보다 몇십 년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한번 잘해보자.’라고.

탈북자 출신으로 통일교육원장에 임명되고 나서 축하 전화도 많이 받았지만 “잘하라.”는 준엄한 격려의 전화도 많이 받았다. 어깨가 많이 무겁다.

이 자리는 개인 조명철에게 준 자리가 아니다. 북한에서 온 2만 1000명에게 준 자리다. 나를 통해 북한 국민들에게 “남한은 기득권도 나누어 주는 곳이다.”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그 희망을 찾는 대상이 중국이나 러시아가 되어선 안 된다. 북한 국민들의 희망은 남한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 국민들이 넓게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탈북자들과 기득권을 나누지 않으면 통일은 요원하다.

이 자리에 지원을 한 이유는 북한과 관련된 갈등의 뿌리를 뽑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했을 때 양쪽의 경제적 격차는 1대4였다. 통일 후 20여년이 지났지만 동독의 경제 규모는 서독의 80% 수준까지밖에 따라잡지 못했고 여전히 지역 갈등이 존재한다. 이에 비해 남북한의 경제 규모 차이는 38대1이다. 이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공포이기도 하다.

●경제 격차 38배는 기회이자 공포

남한에서 통일에 대한 의식이 많이 희박해졌다는 우려가 많지만 나는 기우라고 생각한다. 몇 차례의 도발이나 경제적 격차 등에서 오는 부담감이 급속하게 확산되어서 소수의 생각이 마치 다수의 의견처럼 비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통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다수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한 국가가 선진국이 될수록 정신적·물질적 의식 수준의 성장과 함께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문화가 심화된다. 이제는 통일에 대한 논의에서 과거의 흥분을 덜어낼 때다. 민족의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고, 나는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바뀌어야 한다.

●경제통일보다 문화통일 중요

통일은 우리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주제다. 통일의 비용은 남북한의 경제 수준이 같아질 때까지 발생하지만 통일의 편익은 후대에 무한하게 발생할 수 있다.

통일 교육은 북한 현실을 제대로 아는 데에서 시작돼야 한다. 동·서독이 경제 규모 비율이 1대4라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했다면 통일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공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변형하지 않고 모든 부분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탈북자 출신으로 처음 고위 공무원 자리에 오른 나를 두고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겐 아직 꿈이 남아 있다. 통일이 되어 내 고향 평양 땅을 다시 밟는 날, 북한 국민들의 문화 통일을 위한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북한 국민들의 국민성이나 잠재성을 볼 때 물질적으로 잘살게 하는 것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와 생각, 행동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우면서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통일은 실패한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갑자기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도 사회가 안정을 이뤘을 때 비로소 구가할 수 있는 문제다. 통일 조국이 성장을 지속하려면 북한 국민들을 위해 자유 민주 체제의 질서와 문화를 공유하게 할 교육이 대규모로 이뤄져야 한다. 나는 평생을 교육자, 연구자로 살아왔다. 아직 남아있는 나의 꿈, 그 꿈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2011-06-14 6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