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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장군, 비밀 작전 뒤 자살한 이유

北 장군, 비밀 작전 뒤 자살한 이유

입력 2013-04-02 00:00
업데이트 2013-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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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이란에 탱크 60대 등 전폭지원…1982년 외교문서 공개

1980년대 초반 국제 정세에서 남북한의 비밀스러웠던 행보가 공개됐다.

북한이 1980년 발발해 8년간 지속된 이란·이라크 전쟁 초반, 이란에 T62 전차 60대와 특수전 교관 등 군사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외교문서로 확인됐다. 같은 시기 남한은 전 세계 언론에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폭로하는 캠페인을 은밀하게 전개하며 북한 체제 고발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1일 공개된 외교부의 외교문서 ‘북한의 대이란 군사지원’에 따르면 주이란 한국대사관은 1982년 4월 30일 이란 군인의 첩보를 토대로 “북한이 오토바이에 LPG 통을 적재해 이라크 탱크에 충돌시키는 특공대식 탱크 파괴기술을 지도·실전에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이란에 다양한 군사지원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T62 전차 60대와 지대공 및 대전차 유도탄, 다연장 로켓포 등 모두 3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이란 국적 B747기(연간 51회 수송)와 선박을 통해 공급했다. 또 1980년 11월에는 특수전 훈련교관 60여명, 1981년 10월과 1982년 2월에는 T62 전차 훈련교관 요원 30여명을 이란에 파견했다.

외교 전문에는 북한군 장성이 1981년 12월 이란·이라크 국경지대에서 암호명 ‘블라인드 밀리언’이라는 작전을 지휘하다 실패하자 자살했다는 소문도 기재됐다. 전두환 정부는 1982년 당시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 15일)을 앞두고 전 세계 언론에 북한 정치범수용소 폭로 공작을 준비했다. 외교문서 ‘북한 특별독재대상구역 폭로활동’에 따르면 정부는 1979년부터 자수한 남파간첩과 북한군 장교 등을 통해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확인했다. 정부가 파악한 수용소는 함경북도 온성, 회령 등 8곳에 10만 5000명으로 추정됐다.

정부는 안기부가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폭로계획안을 만들었다. 디데이(폭로 시점)는 김 주석 생일 직전인 3월 25일부터 4월 10일로 정했다. 정부는 세계 언론에서의 기사 노출 계획 방안을 짜고, 국제기구 제소를 병행토록 했다. 특별 취재를 하는 외신에는 관련 특종 정보도 제공키로 했다. 정부의 폭로 계획이 실행되면서 미국 뉴욕타임스가 1982년 4월 11일 첫 보도를 했고, 그해 4월 23일까지 53개국 150여개 매체에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가 헤드라인으로 장식됐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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