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와 영입경쟁 조급증 속 검증시스템 ‘구멍’이 화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창당준비위 발족을 이틀 앞둔 8일 호남 출신 고위직 관료 5명을 입당 1호로 발표했지만, 영입 데뷔전부터 체면을 구겼다.이들 가운데 3명이 비리 혐의 연루 전력 논란에 휘말리면서 영입 발표 2시간50분만에 입당 취소를 전격 발표한 것이다.
안 의원은 이날 오전 열린 첫 창당준비점검회의에서 “부정부패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며 비리인사 배제 방침을 재확인하며 혁신의 깃발을 높이 들었으나 정작 야심차게 내놓은 첫 영입의 결과물부터 ‘실축’이 된 셈이다.
10일 창준위 발족으로 시작되는 빠듯한 신당 창당 일정 속에 더불어민주당과의 영입 경쟁에서 주도권을 잃으면 안된다는 다급한 마음이 앞서다보니 기초적인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은 게 ‘화근’으로 작용했다.
이날 문제가 된 인사들은 ‘스폰서 검사’ 논란을 빚었던 한승철(53·광주) 전 대검 감찰부장과 김동신(75·광주) 전 국방장관, 허신행(74·전남 순천) 전 농수산부 장관 등이다.
3명 중 1명은 불구속 기소되고 나머지는 기소유예, 대법원 무죄 판결을 각각 받기는 했으나 안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내놓은 ‘안철수 혁신안’을 감안하면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민주의 ‘김상곤 혁신안’은 하급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공천에서 배제되도록 하고 있지만, ‘안철수 혁신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부패 혐의로 기소만 되더라도 당원권 정지, 공천 배제 등의 엄중한 처분을 받도록 하는 ‘무관용 원칙’을 제시했었다.
안 의원으로선 ‘안철수 혁신안’의 관철을 위해 더민주 문재인 대표와 수개월간 싸웠고 이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 탈당의 단초가 됐지만 정작 신당의 영입인사들이 이 기준에 못미치는 역설적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날 오후 3시30분 인사 결과가 발표된 뒤 오후 6시20분 한상준 창준위원장과 안 의원의 공동기자회견 형식으로 영입을 전격 취소하기까지 2시간50분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들 3명 모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초반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더민주와의 도덕성 경쟁에서 우위를 빼앗길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우려에서 영입 취소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오후 6시로 예정됐던 당명 발표 기자회견은 20분 가량 늦어졌고, 당명 발표에 앞서 입당 취소 기자회견이 열렸다. 굳은 표정의 한상진 창준위원장과 안 의원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이번 입당은 일부 의원 그룹 주도로 이뤄지면서 제대로 된 검증시스템 절차를 아예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 의원측 한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원래는 발기인도 다 인사 검증을 하는데 이번에는 의원들의 추천을 받은 뒤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며 “안 의원이 하루종일 면담 일정이 있어 검증을 거치지 못하고 바로 발표가 된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검증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고, 최종 책임은 한 위원장과 안 의원에게 있는 만큼 단호하게 대처한 것”이라며 “시행착오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 측근 그룹과 의원단 사이에 관계이상설이 심심치 않게 돌던 터에 이번 ‘영입 사고’로 관계가 더 불편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한상진-윤여준’ 투톱 체제를 갖추고 창당에 박차를 가하려던 안 의원측으로선 출발부터 삐걱거리게 되자 침통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안 의원은 저녁 사무실 인근 한 음식점에서 안 의원의 지난 2012년 대선캠프인 ‘진심캠프’와 2013년 ‘새정치추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멤버들이 모인 가운데 ‘떡국모임’을 갖고 새출발의 결의를 다졌으나 부적격 인사 영입의 후폭풍으로 그 빛은 다소 바랬다.
모임에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이옥 덕성여대 명예교수,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조광희 변호사 등 40여명이 참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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